오늘보다

  • 여는글
  • 2015/08 제7호

고작 밥 한 끼

  • 김영글 편집실
"오늘 저녁에 뭐 먹지?" 인류가 가장 많이 반복해온 질문 중 하나다. 먹을 게 없어 괴로운 시절은 지나왔건만,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도, 고작 밥 한 끼가 웃음과 눈물을 만드는 것도 여전하다. 게다가 지금은 먹을수록 배고파하는 자본과 조장된 식탐의 공세 앞에 속수무책인 시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헷갈리는 날들이다. 

이상할 정도로 뜨거운 먹방 쿡방 열풍에도 이유는 있는 셈이다. 채널마다 펼쳐지는 요리의 향연을 둘러싸고 ‘집밥’ 정체성 논쟁까지 붙었다. 요리 열풍을 보는 것도 거기에 합류하는 것도, 돈을 벌고 밥을 먹는 일의 반복만큼이나 피로한 일이다. 하지만 그 피로는, 꽤 견딜 만한 가치가 있는 피로다. 너도 나도 밥해먹는 이 거국적 유행이 정말로 실용적이어서도 아니고, 모성의 신화를 걷어내 주어서도 아니다.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고작 밥 한 끼’에 행복을 투사하는 우리 시대의 가난한 마음을 보게 하기 때문이고, 역설적으로 현대인이 무엇을 결핍하고 있는지 귀띔해주기 때문이다. 

진짜 밥의 시간은 티비를 끈 후에 온다. 짬을 내어 자신의 한 끼를 직접 해결하는 과정을 온전히 겪는 일, 더 나아가 그 밥을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일이 주는 작은 기쁨은 인간됨의 의미를 돌아보게도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은 그동안 나눠먹은 밥의 의미로 삶을 지탱하는 게 아닐까? 좀 이상한 고백이지만, 지금도 나를 각성시키는 건 책 한 구절이나 누군가의 가르침이 아니라 몇 해 전 어느 농성장에서 밤을 새고 얻어먹은 뜨거운 계란국 한 숟갈의 기억이다. 그 기억은 연대와 투쟁이라는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단어에 질감을 새겨주었고, 밥벌이의 고난이라는 삶의 실감을 주었다. 

구로공단 50년, 구로동맹파업 30년.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숫자지만, 그 숫자도 쉼 없는 노동의 그늘 아래 가려진 밥벌이의 시간이다.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하는 밥 한 끼의 의미로 환산할 때, 역사의 시간은 박제된 연표로 남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로에서는 노동자들이 그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서울남부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는 그치지 않고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을 만나왔다. 공단의 이름은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노동조건은 보다 고단하고 힘겨워졌다. 이번 호에서는 그 아이러니한 구로공단의 오늘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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