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사회운동
  • 2015/06 제5호

연금개악 함정에서 탈출하려면?

노동자 단결에 기여하는 연금 전략을 만들자

  • 김태훈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5월 2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 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합의문’에 합의하면서 공적연금 강화 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연금액이 개인의 생애평균소득의 몇퍼센트인지를 보여주는 비율로, 월연금 수령액을 연금 가입기간의 월평균 소득으로 나눠 구한다) 50퍼센트 인상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합의에 따르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2배나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딴지를 놓았다. 새누리당은 소득대체율 50퍼센트를 명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 야당과 재협상을 시작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합의를 어기는 것이라 반발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의 불길이 국민연금으로 번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 언론과 학자들이 저마다의 논평을 내놓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 다음 두 가지 질문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첫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퍼센트로 인상하면 보험료를 2배 인상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인가? 둘째, 현재 노인 빈곤과 앞으로 발생할 노동자들의 노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공무원연금 개악을 저지하고,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퍼센트로 올리면 문제가 해결될까? 
 

박근혜 정부의 기만
: 국민연금 형평성론에서 국민연금 불신론으로

국민연금의 보험료를 두 배 올려야 하나, 아니면 1퍼센트만 올리면 되나? 5.2 합의 이후 ‘세금 폭탄’을 언급하며 보험료를 두 배 올려야 한다는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주장과, 1퍼센트만 올려도 된다는 새정치연합 및 김연명 교수의 주장이 맞부딪쳤다. 

양측의 주장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국민연금기금을 언제까지 얼마나 쌓아둘 것인지의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 제도는 2043년부터 기금이 줄어들기 시작해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되는 것을 가정해서 설계되어있다. 만약 보험료 인상 없이 소득대체율을 50퍼센트로 인상한다면 기금고갈 시기는 2054년으로 6년 앞당겨진다. 이를 2060년으로 연장하려면 보험료가 1퍼센트 인상되어야 한다. 김연명 교수의 1퍼센트 인상안의 근거다. 그러나 이 주장은 기금고갈 시점만 유지할뿐 후세대로 넘어가는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그렇다면 보험료를 2배 인상해야 한다는 정부 중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2100년까지 ‘일정한 적립배율 유지’를 위해서는 보험요율이 18.85퍼센트(현재 9퍼센트의 2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정한 적립배율’은 2100년에도 향후 17년간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기금을 쌓아둔다고 가정한 것이다. 이 정도면 GDP의 140퍼센트 수준의 기금을 적립해야 하는데 2014년 말 국민연금의 기금적립액 470조 원(GDP대비 35퍼센트)이 세계 4위 수준인 것을 볼 때 지나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보험료를 2배로 올려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현재의 연금 제도를 부정하고 더 많은 기금 적립과 적립방식 유지를 가정한 기만적인 선동이다.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악을 추진하면서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강조하더니, 정작 국민연금 강화론이 나오자 곧바로 그에 대한 불신을 선전했다. 공적연금 강화가 곧 세금폭탄이자 기금 고갈이라는 공갈협박은 박근혜 정권이 공적연금을 강화할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원리적으로 노동자 계급 전체로 보면 공적연금은 노동자 계급이 낸 것보다 더 가져가는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공적연금을 통해 고소득자에서 저소득자로의 일정한 소득 재분배가 이루어진다. 반면 민간보험(사적연금)의 경우 소득 재분배 효과가 없고, 노동자가 낸 보험료의 상당 부분이 금융자본의 이윤으로 강탈된다. 공적연금에 대한 불신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결국 민간보험사들일 뿐이다.
 

연기금과 금융시장
: 더 많은 적립이 더 많은 불안을 만든다

정부는 매번 기금 고갈 시점을 강조하고 언론은 이것을 선정적으로 받아쓰지만, 기금이 고갈되어도 연금제도 자체가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 당해연도의 보험료 수입을 당해연도의 연금으로 지출하는 부과식 연금으로 전환하면 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건강보험이 이와 같은 방식이고, 독일 연금 역시 부과식이다. 그런데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연금제도가 변화하는 시기, 즉 기금이 소진된 연도에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가 갑자기 올라간다는 점이 문제다. 

한 세대가 자신이 보험료로 낸 것보다 연금을 더 많이 받는다면 다음 세대가 이 부담을 져야 한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그 다음 세대에 또 부담을 넘길 수 있다. 연금의 특성상 미래세대로부터 현재세대로 자원을 이전하는 세대 간 분배는 필연적이다. 인류의 역사에는 항상 청장년 세대가 노령 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간 연대’의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산율이 낮아지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 부양비(65세 인구/생산가능인구)가 높아지면서 후세대의 부담이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다. 이전과는 다른 충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출산율이 최하위인 한국이 바로 이런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루어진 연금 개혁은 이런 근거를 들어 적립식 연금 모델을 확산하였다. 기금을 적립하고 이것을 투자해서 발생한 운용수익으로 후세대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적립식, 즉 기금의 운용 수익만으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기금을 쌓아야 하기에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도입 당시부터 부분 적립식으로 설계했다. 기금을 축적해 그 운용수익을 얻는 한편 일정 시기가 지나면 지출이 많아져 축적된 기금이 줄어든다. 현재 국민연금은 70년을 재정추계 기간으로 설정해 그 기간 동안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평가한다. 

재정추계 기간을 100년으로 늘리자고 주장하는 보수적 학자들은 연금제도를 더 내고 덜 받도록 조정해 기금을 더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연금재정을 얼마나 쌓아둬야 더 오랫동안 안정시킬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인구변화, 경제성장률 등을 근거로 100년 후의 미래까지 계산한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현재의 인구변화 추이가 지속되면 2100년 한국의 인구는 지금의 절반인 2500만 명으로 줄어든다. 이런 가정에서는 연금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존립 자체가 문제가 된다.  

게다가 막대한 기금 적립은 또다른 문제를 만든다. 현금으로 적립된 기금은 채권, 주식, 부동산에 투자되고 있다가 고점을 지나면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면서 다시 현금화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갖고 있던 채권, 주식, 부동산을 급속히 매각해야 하는데 이 매각 규모가 클수록 금융시장과 경제에 미칠 영향이 커질 것이다. 추가로, 연기금의 금융시장 투자가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고 노동유연화를 확대해 노동자를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연기금이 많이 쌓이고,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할수록 공적연금은 금융시장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공적연금, 더 넓고 깊은 전략을 마련하자

2013년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논란 과정에서 민주노총을 포함한 진보진영의 연금 정책은 ‘10+45’였다. 평균임금의 5퍼센트 수준인 기초연금을 2배 인상하고, 60퍼센트에서 40퍼센트로 점차 하락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5퍼센트에서 멈추라는 요구였다.(현재 소득대체율 46.5퍼센트) 그런데 지금 2007년 국민연금 개악과 2015년 공무원연금 개악에 앞장섰던 여야정당이 갑자기 국민연금 50퍼센트를 두고 다투는 사태가 벌어졌다.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운동 전선 내부의 혼란도 발생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퍼센트 인상 합의의 후퇴를 비판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그것이 국회의 공무원연금 개악 야합을 인정하는 꼴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혼란이야말로 공무원연금 개악을 별도로 ‘선결’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청와대가 원하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와 공적연금 강화는 분리된 투쟁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공무원연금 개악이 사적연금 활성화와 같은 말이고, 이는 곧 추후에 시도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개악을 추진할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점을 말해 왔다.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 몇 가지를 정리해보자. 첫째, 국민연금의 저급여(연금으로 생활 불가)를 해결하기 위해 소득대체율 인상은 중요하다. 공무원연금을 일방적으로 개악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정권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국민연금에 가입하지도 못했거나, 가입했더라도 가입기간이 짧아 연금액이 적은 다수 노동자들을 고려한 포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공적연금의 문제는 노동시장과 인구 변화를 반영하고 있기에 제도 내부의 개혁만으로 획기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사각지대의 문제, 보험료 상한선 상향과 같은 형평성의 문제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

셋째, 기초연금의 강화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기준 폐지 등 자기가 낸 돈(보험료)과 관계없이 적절한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이나 기여, 가족과 관계없이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존권을 요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계급역관계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은 복지제도의 개선은 역전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주체를 형성하고, 전체 노동자의 단결에 기여하는 연금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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