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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 제5호

교무실 미쓰리? 급식실 아줌마? 우리 진짜 이름은 교육공무직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충북지부 김미경 지부장 인터뷰

  • 인터뷰·정리 김유미 편집실 기획국장

교육 복지와 함께 
늘어난 학교비정규직

현재 초·중·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전체 직원 중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각종 업무를 하는 직원은 45퍼센트에 달한다. 정규직 교사와 거의 맞먹는 숫자의 사람들이 학교란 공간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학교비정규직은 왜 이렇게 많아진 걸까?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충북지부의 김미경 지부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엔 수업 듣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 먹고, 5교시 6교시 끝나면 집으로 가는 단순한 구조였다면, 요즘에는 학교의 기능이 굉장히 다양화되었어요. 공적인 영역에 대한 요구, 교육 복지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간 거죠. 오전에는 수업하고, 점심에는 급식을 먹고, 오후에는 방과후수업을 하고, 그리고 나서도 돌봄교실(맞벌이부부 및 저소득층 가정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교육·놀이활동을 제공하는 정책)에서 돌봄교실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에 갈 때 승하차 실무원들의 도움을 받아요. 또 정규 수업시간에도 과학실무원, 전산실무원, 행정실무원들은 교사와 함께 교육지원 업무를 하죠.”

학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영역이 늘어나며, 교사들이 다 할 수 없는 업무들을 맡을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던 것이다. 충북지역에서 일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종은 크게 나누어도 12개, 세부적으론 60개에 이른다. 김미경 지부장은 “이 사람들이 상시지속적 업무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정규직으로 뽑았어야 하지만,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뽑아내겠다는 마인드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거죠”라고 덧붙였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까지 이들은 대부분 위탁이나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지금은 대부분 무기계약직, 월급제로 전환이 되었으나 신규 직군 중에서는 여전히 기간제, 시간제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김미경 지부장은 “몇몇 직군은, 특히 강사직군(스포츠강사, 영어회화전문강사, 전문상담사 등)은 대책 없이 뽑아놓고 예산 안 되면 자르고 엉망이에요”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을 하며 찾은 우리 이름
‘교육공무직’

필요에 따라 고용되긴 했지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학교 안에서 부차적인 존재로 취급 받았으며 심지어 제대로 된 명칭도 없이 ‘행정보조’, ‘교무보조’ 등으로 불렸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의 전신인 전국교육기관회계직연합회(전회련)가 만들어진 후 했던 일 중 하나가 ‘전 직종 직무명칭 및 호칭 변경 운동’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김미경 지부장은 전회련을 만들고 처음으로 충북도의회에 찾아가 교육위원들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50명 정도가 갔는데, 학교 교장 출신인 한 도의원이 우릴 보고 뭐 하는 사람들이냐 묻는 거예요. 학교에서 이러이러한 일 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더니 바로 ‘아~ 교무실 미쓰 리?’ 이러더라고요.” 김 지부장은 그 말을 듣고 ‘저게 우리 현실이구나’ 싶었다고 한다. 

김 지부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학교비정규직이라는 말을 쓴 것도 최근이에요. 초창기엔 내가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게 우리 스스로 자존심 상해서 학교 회계직이라 그랬어요. 그럴듯해 보이니까”라고 말했다. ‘학교 회계직’이란 호칭은 학교 회계에서 월급을 주는 직원이라는 행정적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김미경 지부장은 “그것도 실은 모멸적인 이름이죠. 그만큼 이름이 없었다는 거예요”라고 했다. 

‘회계직연합회’라는 이름에 얽힌 우스운 에피소드도 있다. “전회련 충북지부 창립식을 한다고 다음 카페에 올리니까 검색하면 뜨잖아요. 청주에 되게 큰 회계법인 임원이 양복 빼입고 창립식에 온 거야. 교육청 직원인가 해서 가서 말을 걸었더니, 자기가 잘 모르는 회계사 단체 행사인줄 알고 와 봤대요.” 그 후로도 ‘학교에서 회계 보는 분들인가’ 하는 오해도 많았다. 

전회련은 이후에 연합회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을 전환했고, 2014년 10월 ‘전국교육공무직본부’로 이름을 바꿨다. 교육공무직이란 ‘공공기관인 교육기관에서 공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를 일컫는 새로운 개념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며 만든 새로운 직제인 ‘공무직’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다. 김미경 지부장은 “노조 활동을 하며 비로소 우리 이름을 찾은 것”이라고 교육공무직이란 이름을 설명했다. 
 

학교비정규직의 현실을 마주하다

김미경 지부장은 학교급식 위탁업체의 영양사였다. “그땐 항상 ‘빨리 직영 되어서 학교 직원으로 근무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2007~09년에 걸쳐 충북지역 전체 학교급식이 직영으로 전환이 되었다. 2006년 CJ위탁 학교급식에서 집단 식중독 사태가 발생한 뒤 학부모들이 위탁급식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여 충북교육청 방침으로 정해진 것이다. 김미경 지부장은 당시 다니던 학교에 고용승계가 되어 바라던 대로 직영 영양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 앞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월급을 받고 기절을 할 뻔했어요. 행정실에 전화까지 했다니까요. ‘나머지는 언제 나오나요?’ 이렇게. (웃음) 연봉, 상여금 이런 거 물어볼 생각을 안 하고, 고용승계 해준다는 데에 감사해가지고 그냥 직영으로 갔다가 충격을 받은 거죠. 그때 월급이 107만원이었나, 뗄 거 떼고 나니까 두 자리 수였어요. 영양사조차도 그랬으니 우리 조리원 언니들은 70~80만 원대를 받은 거고.”

그뿐 아니었다. 위탁 때에는 평가를 잘 받으면 해마다 연봉이 올라갔고 협상이 가능했으나 직영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년엔 오르겠지 했는데 제가 들어간 해부터 공교롭게 연봉이 3년째 동결이 된 거예요. 공무원 연봉이 동결됐으니 동결이래. 아니 왜 공무원 월급이 동결되는데 우리 월급이 동결 되냐고요. 우리가 거기에 준해서 월급을 받는 거라나.” 

첫 월급날 이후 더 큰 충격은 첫 명절에 받았다. “위탁으로 일할 땐 아무리 그래도 사장님이 봉투 들고 와서 참기름 세트랑 주고 그랬거든요. 근데 명절 전날인데 아무도 안 불러서 다섯 시까지 기다렸고, 기다리다 못해 행정실에서 일하는 동생한테 전화를 했어. 그 사이에 좀 친해졌거든. 명절휴가비 왜 안주냐니까 걔가 ‘어우 언니 그런 거, 우리 없어요.’ ‘아니 세상에 명절휴가비 없는 직장이 어디 있냐.’ ‘언니 저번에 내가 [상여금도 없고 수당도 없다는 걸] 다 알려 줬잖아요.’ ‘아 그건 월급 얘기고.’ ‘우리는 하여튼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는 거야. 내가 우리 조리원들한테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그래놨는데. 그래서 학교 바로 옆 이마트에 가서 내 돈으로 참기름 세트 열 개를 사가지고 조리원들한테 나눠줬어요.”
 
작년 10월 파업 전에 노조 조끼를 착용하고 근무하는 급식실 조리원들의 모습
 

조리원들과 ‘짜고 친’ 파업의 기억

김미경 지부장이 영양사로 일하며 본 조리원들의 노동조건은 말도 안 되게 열악했다. “조리원들 일당이 너무 기가 막힌 거야. 주차(근로기준법에는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이 보장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수당을 통상적으로 주휴수당, 주차수당이라 부른다)도 없고 월차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 그냥 애들 학원비 정도 벌러 나온다고 생각하고 내가 주차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언니들이 많았어요.”

위탁으로 일하던 시절, 김미경 지부장은 조리원 임금 인상을 위한 ‘기획 파업’을 벌인 기억이 있다. 

“전날 남아서 다음날 메뉴를 금방 할 수 있는 걸로 미리 준비를 해 놨어요. 팀웍이 좋고 다 선수들이니까 순식간에 했죠. 오징어두루치기, 쇠고기미역국 이런 거였는데, 그날 메뉴는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볶고 끓이기만 하면 되게 준비를 해 놓고, 다음날 나만 혼자 출근을 했어요. 조리원들한테는 학교 근처에 5분 내로 튀어 올 수 있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놓고.”

당장 점심 급식을 해야 하는데 조리원들이 출근을 안 하니 난리가 났다. 교장실에 불려간 김미경 지부장은 조리원들이 일당이 주변 학교에 비해서도 너무 낮은 수준이라 이렇게는 일 못 하겠다며 출근을 안 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위탁업체 사장이 황급히 학교에 도착했고 교장과 협의하여 조리원 임금 인상을 약속했다. 소식을 들은 조리원들은 학교로 복귀했다. 김미경 지부장은 “바로 튀어 와서 준비를 해서, 12시 반 급식인데 12시 전에 밥이 다 됐어. 정상적으로 급식 다 나갔지.”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그땐 그게 파업인지도 잘 몰랐다고 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우리가 한 일이 되게 큰 거였더라고. 그때 기획파업 했던 분들이 지금도 임원을 하시고 그래요. 저에게 그 하루의 경험이 ‘뭉치면 되는구나’ 하는 걸로 남았어요.”
 

연합회에서 노동조합으로

전회련 충북지부의 시작을 주도했던 것은 바로 김미경 지부장이었다. 노동조합이 아니라 ‘연합회’라는 게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저는 처음에 노동조합이 겁났어요. 빨간 머리띠 두르고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런데 경기도에 학교회계직연합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딱 좋다고 생각해서 전화를 해봤어요.”

김미경 지부장은 본격적으로 연합회의 회원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는 언니들한테 쪽지를 날렸죠. ‘언니들 이렇게 계속 살래?’라고. (웃음) 그 시점에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지부들이 출범을 하고 있었고, 전회련 충북지부를 만드는 데에 제가 총대를 메겠다고 했어요. 2010년 10월에 창립식을 했는데 250명이 넘게 왔어요.”

학교마다 뿔뿔이 흩어져 일하고, 직종도 다양했지만 뭉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김미경 지부장은 “누가 나서주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모이면 항상 ‘우리도 죽을 만큼 일하고, 동일 자격증 갖고 있는데 왜 이래’ 하긴 했거든요. 계기가 생기니까 불처럼 일어난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요. 창립식 하고서 1000명 만드는 데까지 몇 달 안 걸렸어요”라고 회상했다. 

전회련은 2011년 12월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노동조합’으로 조직을 전환했다. 노조라면 펄쩍 뛰던 사람들이 민주노총의 문을 두드린 것은 연합회로 활동하는 것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구속력이 없으니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노력해보겠다고만 하고 변하는 게 없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으로 가자고 결정을 하게 됐죠.”

노동조합으로 전환해 투쟁을 하자 본격적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실질적인 변화도 만들어졌다. “창립식 장소에 걸어놓은 다섯 가지 구호 ‘교육감 직접고용’, ‘무기계약 전환’, ‘호봉제 쟁취’, ‘맞춤형복지비 쟁취’, ‘명절상여금 쟁취’가 꿈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 이루어졌어요. 노조 만들고 4년 동안 우리 임금 인상률이 25%에요. 뭉치면 된다는 걸 확인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더 노조로 응집하게 되고요.”
 

나의 자랑, 충북지부

충북지부는 첫 상경집회 때 ‘최강충북’이라는 깃발을 만들어 들고 갔다. 그만큼 지부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높다. 실제로 충북지부는 조직대상 6000명 중에 3000명의 노동자가 지부에 가입해서 전국 1위의 조직률을 자랑한다. 

충북지부는 설립 이후 빠르게 조직체계의 완결성을 갖췄다. 김미경 지부장은 “지부 내에 주요 직군의 핵심 분과장들을 만들고, 지역별로도 충주지회 청주지회 이런 체계를 세웠어요. 노동자들이 내 문제가 다뤄지지 않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이유가 없잖아요”라고 설명했다. 

초창기 조직 확대를 뒷받침한 것은 임원들의 헌신적인 활동이었다. 그땐 전임으로 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도 임원들은 일을 하면서 조퇴하고, 연차를 내서 주변 학교를 조직하러 다녔다. “조퇴하느라 매일 아픈 척 했죠. 설사, 복통, 근골격계 할 것 없이 모든 병이 다 있고. 그렇게 분과장들이 열심히 조직하러 다녔어요. 저도 그땐 급식 끝내 놓고 2시부터는 우리 학교에 없었어요. 학교에서 맨날 김미경 어디 갔냐고 했어요. 나중엔 내 방 앞에 CCTV까지 달아놔서 옥상으로 해서 다른 길로 도망가고, 별 짓 다했어요.”

무엇보다 자랑하고 싶은 것은 집행부는 조합원을 믿고, 조합원은 집행부를 믿는 분위기라고 했다. “항상 ‘이게 될까?’ 보다는 ‘한 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했어요. 집행부가 먼저 자신이 없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린 주저하지 않고 했어요. 조합원들도 워낙 잘 따라 줬어요. 작년에 두 번째 파업 하고 가장 잊지 못할 수기가 뭐였냐면, 처음 파업에 나온 조합원들 인터뷰를 하는데 ‘어떻게 나오셨어요?’ 그랬더니 ‘노조 지침이니까요.’ 그렇게 대답을 해서 우리가 한 방 먹었어요. 왜 나와야 하는지, 항상 구구절절 설득하고 그랬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지침이니까 나왔다. 그만큼 노조를 믿고 그대로 한다는 거죠.”
 

보수, 진보 교육감과의 
싸움 속에 중심잡기

충북지부는 이기용 충청북도 교육감 집권 속에 출범했고, 보수교육감의 노조탄압에 맞서 싸운다는 상징을 띠고 조직을 확대했다. 이후 2014년 6월 지자체선거 때에는 진보진영이 뭉쳐서 김병우 현 교육감 선출을 위해 선거운동에 적극 참가했다. 보수, 진보교육감 모두를 겪어본 소감은 어떤지 김미경 지부장에게 물었다. 

“보수교육감, 진보교육감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사회에서 만들어낸 프레임일 뿐이지 그런 단어로 교육감들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수교육감을 보면] 보수라는 이름에 자기가 숨는 거야.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우린 보수라서 그렇다고 합리화하고. 자기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타이틀로 쓰는 것 같지, 내가 보기에는 보수라는 정치적 이념이나 철학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김미경 지부장은 보수교육감이니까 싸워봐야 소용없다거나, 진보교육감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은 노조를 갉아먹는 위험한 인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싸우는 건데 그게 싸우다보면 대 이기용 투쟁이 되어 버려요. 나중에는 막 차로 치고 싶어. 이기용 나쁜 놈. 이렇게 되어버리더라니까. 근데 그게 진보교육감이 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 교육감도 진보적이라고는 하지만, 어떨 때 보면 보수교육감보다도 못할 때가 있어요. 진보 뽑아 놨는데 우리가 50일 넘게 교육청 바닥 농성을 하게 될 줄을 생각이나 했겠어요? (김병우 교육감은 예산 상의 이유로 작년 파업 요구안인 밥값쟁취를 승인하지 않았고, 충북지부는 올해 1월부터 도교육청에서 농성을 전개했다. 싸움은 52일 만에 승리로 끝났다.) 진보냐 보수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중심을 잡고, 전술적으로 잘 접근해서 투쟁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2014년 가을, 3년의 투쟁 끝에 쟁취한 단체협약 체결
 
밥값 쟁취를 위한 도교육청 농성 투쟁 모습.
누군가에겐 당연한 명절휴가비, 점심 밥값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에겐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다.
 

학교의 담을 넘어 세상으로

작년 9월부터 김미경 지부장은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본부장도 겸임하고 있다. “우리가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본부에서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 충북본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관계없이 지역 연대가 끈끈한 기풍이 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바통을 받은 것 같아요.”

김 지부장은 공공운수노조 소속의 지역 노동자들을 만나며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청주시청 공무직 노동조합 교섭에 참여해보니까, 우리와 같은 공무직인데 각종 처우개선 수당이나 이런 건 훨씬 좋아요. 우리가 앞으로 모델로 삼아야 될 단위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저희보다 못한 조건의 청소노동자를 만나면서는 같이 연대할 방안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고.”

지역의 투쟁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청주시 노인병원 문제, 청주대 문제, 서원대 문제, 이런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중간 역할을 제가 하게 된 거죠.” 

김미경 지부장은 요즘 교육공무직본부 조합원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학교에서 세상으로’라고 했다. ‘학교에서 세상으로’는 2014년에 만들어진 ‘교육공무직노동자의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학교를 넘어 지역 사회로, 세상으로 시야를 넓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늘 내 문제, 우리 밥값, 임금, 병가일수, 악덕 교장, 교육감 이런 얘기만 하다가, 지역 사회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조금 더 나아가서 노동법 개악, 사회공공성, 대정부 투쟁도 하게 된 거죠. 조합원들이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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