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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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 제4호

5월의 열정과 인내

  • 구준모 편집실장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감각기관에 뚜렷한 이미지와 감촉으로 포착되지 않는 현실이 있다. 사회와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실체가 그렇다. 쉬운 방법은 그것을 하나의 기계에 비유하는 것이다. 설계자가 있고, 원료와 에너지가 투입되며, 부품들의 톱니가 맞아 돌아가면 의도한 상품을 만들어낸다. 그런 사회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설계자가 필요하다. 선량하게 의도된 기계가 더 적은 자원을 소비하고, 더 좋은 상품을 만든다. 
 
그러나 복잡한 사회적 분업 속에서 다양한 하위 체계를 가지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기계와 같지는 않다. 세월호 참사 음모론이 힘을 얻었던 것도 바로 단순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그것은 선박 관련 규제와 노동 환경의 변화 속에서 오래 잉태되고, 조류, 배의 복원력, 선원들의 업무, 해경, 재난 지휘체계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주조된 참사였다. 은폐에 급급한 정부 탓에 이러한 복합적 원인들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진상규명 없는 사태 정리를 원하는 박근혜 정부는 선원 처벌과 유족 보상으로 여론을 잠재우려 한다. 부여되지 않은 권력까지 남용하여 만든 시행령으로 특조위를 무력화시키면서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호 투쟁의 곤란은 이런 것이다. 박근혜에 초점을 맞춘 비난은 투쟁을 온전한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가, 인양과 시행령 폐기 요구는 줄다리기 끝에 정부안의 수용으로 마감되지 않을까, 유가족의 분노와 그에 대한 집단적 공감의 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규제완화를 끝내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4월 16일과 18일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벌였던 거리 투쟁에서 우리는 작은 승리감을 맛보았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함께 울었다. 차벽을 뚫고 유가족을 만났다. 그 와중에 박근혜 정권의 핵심을 겨냥한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공무원 연금 개악과 노동시장 구조 개악이라는 반노동정책은 거센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민주노총 총파업과 연금 개악 저지 집회가 연달아 있다. 세월호 투쟁의 물꼬가 어느 방향으로 트이냐에 따라, 우리는 진실과 미래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물론 호락호락하지 않다.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의 마음이 계속 응집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박근혜 정권의 부패 스캔들을 쥐고 흔들 칼자루는 검찰로 넘어갔다. 노동자 투쟁에 대한 해묵은 반감과 구호에 미치지 못하는 조직력은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또 헛발질이나 해대지 않을까 불안하고, 재보선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야당 세력보다는 여당에게 유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사회가 하나의 기계가 아니라면, 의도와 결과를 섣불리 예상하지는 말자. 우리의 투쟁이 정당하다면 불안과 비감에 젖기 보다는 행동을 필요로 하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5월은 불같은 열정과 집요한 인내를 모두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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