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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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 제3호

의료공공성 투쟁의 젊은 선봉장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박경득 분회장 인터뷰

  • 인터뷰 구준모 오늘보다 편집실장
  • 만난사람 박경득 서울대병원분회 분회장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에 앞장서고 계신 박경득 분회장님 반갑습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2013년 파업에 이어 작년에 세 차례나 파업 투쟁을 벌였죠?
작년에 서울대병원분회는 6월, 7월, 8월 세 차례 파업을 했어요. 전체적인 의료민영화반대 투쟁에 함께 했는데, 우리만의 구체적인 과제도 있었어요.
 
서울대병원이 SK텔레콤과 함께 자회사로 헬스커넥트를 만들었거든요. 작년에 영리자회사를 통한 우회적인 의료민영화가 이슈였는데, 우리는 헬스커넥트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투쟁했어요. 그 결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헬스커넥트가 위법이라고 발표하고, 여러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조명했어요. 국민들도 영리자회사 입법 반대 의견서를 200만장을 냈어요. 원래 100만장이 목표였는데 두 배나 받은 거예요.
 
8월 파업 때는 박근혜 정부의 ‘가짜’ 공공부문 정상화 반대 투쟁도 중요했어요. 서울대병원은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서도 임금과 복지가 열악한 편인데, 더 후퇴할 수 없었죠. 파업 결과 실제로 개악 저지에 승리했어요.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투쟁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타협했는데 우리는 해낸 거예요.
 
2013년에 파업을 처음 경험한 젊은 조합원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파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별로 없고, 정말 즐기는 파업을 했어요. 
 
세 차례나 파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조합원과 함께 투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공공기관은 사회공공성 투쟁을 해야 여론의 지지를 받아요. 서울대병원이 대표적인 국립대 병원이니까 의료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우리 주장에 대해서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어요. 조합원들에게는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과 가짜 정상화 저지 투쟁이 하나라는 걸 강조했어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지만, 그건 지탄의 대상이 아니라 그런 기준으로 모든 노동자들의 조건이 확대되어야 하는 거죠. 우리가 사회공공성도 지키고 노동자의 권리도 지킨다는 자부심과 정당성이 투쟁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파업이 노조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조합원 의식 성장은 역시 파업 때 가장 획기적으로 늘어요. 교육이 집중적으로 되고 조합원들이 우리가 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지 확실히 느끼게 되죠. 파업에 나왔던 조합원들은 국립대병원의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생각을 모두 하게 되었어요. 
 
2013년에 파업을 처음 경험한 젊은 조합원들이 많았어요. 2007년 이후 6년만의 파업이었거든요. 그래서 조합원들이 파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별로 없고, 정말 즐기는 파업을 했어요. 물론 무노동 무임금 적용이나, 교섭장 앞에서 긴 시간의 대기 투쟁, 철야 농성 등이 힘들었는데, 그러면서도 내가 병원운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죠. 
 
파업으로 단체협약 개악 없는 임금인상을 합의했는데, 그 후 사측의 공세가 더 강력한 것 같습니다.
병원이 매우 세게 나오고 있어요. 노동조합의 투쟁을 꺾어서 ‘정상화’를 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해서, 취업규칙 변경을 추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죠. 그렇게 하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단체협약(단협)이에요. 우리 단협에 취업규칙의 일방적 변경이 불가능하고, 노동조합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요. 병원은 단협이 살아 있는 한 취업규칙 일방변경은 어렵다고 보고, 작년 12월에 단협 해지 통보를 했어요. 물론 이것도 무효 가처분 재판에 들어갔어요.
 
단협은 금방 해지가 안 되거든요. 협상안의 유효기간 만료 이후에 해지 통보를 하고 그게 6개월이 지나야 실제로 단협 효력이 없어져요. 취업규칙 변경은 그 다음에 가능한 거죠. 그런데 직원들이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를 안 하니까 각종 불법, 부당, 인권유린 등의 방법으로 동의서를 받았어요.
 
야간 근무하고 퇴근해야 하는데, 동의서를 들이밀면서 서명을 해야 퇴근할 수 있다고 한두 시간씩 간호사들을 잡아놨어요.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간호사들이 야간 근무하고 퇴근해야 하는데, 퇴근을 안 시키고 동의서를 들이밀면서 서명을 해야 퇴근할 수 있다고 한두 시간씩 간호사들을 잡아놨어요. 노조 간부가 현장을 순회하면서 그걸 보고 “연장근로수당 줄 거냐? 이렇게 강제적으로 압박해서 하는 것은 불법이다”라고 이야기하면, “연장근무수당은 안 준다. 지금 일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하는 거다”라고 말해요. “강제로 동의서 받으려는 거 아니냐”고 문제제기하면, “강제 아니다. 퇴근하려면 퇴근해라”라고 하죠. 그렇게 간호사들을 퇴근시키는 투쟁을 했어요. 
 
또 비정규직한테는 “너희 정규직 되어야지 않겠어? 계약 연장이 거저 되는 줄 아냐”면서, 정규직 전환된 사람들에게는 “정규직도 되고 했으니 병원 정책에 협조해라”라며 따로 불러서 서명을 받았어요.
 
이렇게 강제적으로 서명을 받아서 병원은 지금 50퍼센트를 넘겼다고 주장하는데 확인은 안 됐어요. 심지어 육아휴직 대체자들까지 서명을 받았죠. 또 곧 계약이 만료되는 비정규직에게까지 서명을 받았어요. 실제로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죠.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일단은 수를 채워야 하니까. 휴직자에게도 동의서를 받기 위해 연락을 했더라고요.
 
노조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병원장을 노동청에 고소했어요. 취업규칙 변경동의는 자율적 의사에 따른 집단적 동의여야 하는데 강제적으로 진행한건, 근로기준법 94조 위반이니까.
 
회사가 취업규칙을 바꿔서 뭘 추진하려는 걸까요?
우선 퇴직수당과 정기휴가를 폐지해서 근로조건과 임금을 떨어뜨리려는 거고요. 다음으로 성과급제 도입을 하려는 거죠. 또 승진체계를 5단계에서 9단계로 세분화 해 성과 연동 승진체계를 만들겠다고 하고요.
 
병원에서 성과급 도입은 아주 심각한 문제에요. 국립대병원 영리화의 주범이 바로 의사 성과급제거든요. 검사 많이 하고 외래환자 더 많이 받으면 월급을 더 주고, 밤에 수술하고 주말에 수술하면 더 주는 시스템이에요. 노조에서는 의사 성과급제가 환자를 위험하게 만들고 과잉진료도 낳는다고 반대했는데, 병원은 너네도 성과급제하라고 나오고 있는 거예요. 
 
이런 문제는 2013년에도 있었는데, 막 취임한 오병희 병원장이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돈 벌어보자고 밀어붙여서 4개월 만에 160억 원의 성과를 낸 거에요. 병원이 돈을 어디서 벌겠어요? 저질 의료 재료를 들여 오고, 작정하고 환자들의 의료비를 올린 거죠. 그리고는 성과 달성했다고 직원들에게 몇 십만 원이 충전된 카드를 뿌렸고요. 한 달 좀 넘는 기간에 430명 정도가 노동조합에 새로 가입했어요. 
 
취업규칙 변경에 맞선 활동을 하면서 노조가 상당한 조직화 성과를 얻었다고 들었어요.
병원이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받으러 다니니까, 직원들이 ‘병원을 믿을 수 없겠구나’하고 자각하게 된 거 같아요. 노조 가입을 망설였던 간호사들이 ‘이제는 해야 겠다’고 마음먹게 된 거죠. 
 
순회를 많이 돈 게 도움이 되었어요. 우리는 병동 순회를 정말 많이 해요. 순회는 수간호사가 있을 때는 부당행위하지 못하도록 돌고, 수간호사 없을 때는 간호사들 만나려고 돌아요. 병원이 한참 불법 서명을 받을 때는 정말 매일매일 새벽부터 자정 이후까지 순회를 해서, 집에도 못가고 사무실에서 자면서 살았죠.
 
그런데 힘들면서도 이게 효과가 대단했어요. 12월 중순에 강압 서명이 시작됐고, 1월 말까지 진행됐는데 한 달 좀 넘는 기간에 430명 정도가 노동조합에 새로 가입했어요. 단시간에 최대로 많이 가입한 기록이죠. 신규 가입자는 간호부가 많고 다른 부서에서도 골고루 가입한 편이에요.
 
이걸 보면서 올해 가짜 정상화 분쇄, 영리화 저지라는 목표가 있지만, 조직을 남기는 것 역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올해에도 4월 파업을 결의했다고 들었어요.
항상 어려운 투쟁을 해왔던 노동조합이기 때문에 올해도 우리는 꼭 승리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특히 성과급제나 단협 해지는 어떤 부분을 내주고 타협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노조로서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교섭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병원이 지금 입장을 고수한다면 올해도 전면파업을 할 계획이에요.
 
성과급제가 곧 병원 영리화로 이어지는 이유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요.
성과급제는 직원들의 근로조건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라, 병원 영리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이게 통과되면 병원이 얼마를 벌면 성과급을 얼마 주겠다고 구슬릴 수 있어요. 실제로 어떤 병원은 노사가 올해 100억 이상 벌면 기본급의 50퍼센트, 150억 이상 벌면 기본급의 100퍼센트 인센티브를 준다는 합의를 해요. 이런 노동조합이 병원이 수익성 중심으로 가는 걸 반대할 수 있을까요? 성과급이 도입된 병원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영상의학과와 진단검사의학과가 돈으로 경쟁하게 되면, 24시간 근무가 위험하다 하더라도 거부를 못해요. 영상의학과에서는 MRI 검사실이 CT 검사실을 이겨야 하고요. 빨리 찍어주니까 좋은 것 같지만, 환자에게도 위험하고 직원에게도 위험해요. 배를 탈 때 많은 사람들이 빨리 타고 가고 싶다고 해도, 무작정 많은 사람을 태우면 안 되는 것과 같아요.
 
공공의료와 환자의 안전은 단기적으론 이윤과 대립해요. 장기적으로는 안전하게 하는 게 비용도 줄일 수 있지만 당장은 안 그렇죠. 그래서 성과급제 도입이 단순히 임금체계 문제가 아니라, 서울대병원의 운영 속성을 완전히 바꾸는 문제인 거예요. 
노동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분노도 있겠지만, 감동의 순간이 더 중요해요. 
 
주제를 좀 바꿔볼까요? 서울대병원분회는 조합원이 젊고 분회장님도 젊어서 활력이 있는 거 같아요.
우리도 젊은 간부가 별로 없다가 파업을 거치면서 젊은 간부들이 많이 보강됐어요.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게 젊은 간부도 많이 모이게 해요. 노동조합이 새로운 사업 없이 하던 일만 하면 새로운 사람도 안 모여요. 새로운 사업을 통해서 조합원이나 대의원들이 좀 더 노조 활동으로 가까이 올 수 있고 그러면 간부도 하게 되죠. 제일 좋은 사업은 파업이고. (웃음) 그 외에는 일상적인 소모임도 많이 하고 있어요. 밴드 동아리나 영어 모임이라든가. 
 
요즘은 예전처럼 학생운동이 있어서 활동가가 공급되지 않죠. 직장에 들어와서 노조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노동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분노도 있겠지만, 감동의 순간이 더 중요해요. 그런 순간을 체험할 수 있어야 돼요. 젊은 간부들은 학생운동 출신이 별로 없어요. 이런 사람들이 간부가 되는 것은 ‘노조 활동이 진짜 중요하고 내가 용기를 내서 해야 될 만큼 의미 있는 일이구나’하고 결심할 때 가능한 거죠.
 
그러려면 간부들끼리만 사업이나 교섭을 하면 안 되고 현장 조합원이나 대의원들이 많이 참여해야 해요. 우리는 전체 교섭위원 중 70퍼센트 정도를 조합원이나 대의원이 해요. 조합에 처음 가입한 사람, 처음 대의원한 사람도 많이 참여하고요. 경험 많은 전임자가 하면 편하긴 하죠. 교섭위원의 70퍼센트를 현장 조합원들이 하면 긴 시간 함께 토론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준비해야 하고, 또 처음 나온 대의원은 속상해서 울기도 해요. 이런 교섭과 투쟁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이렇게 교섭을 했다가 파업, 합의까지 몇 개월 동안 다 체험하면 노조 활동가가 되는 거예요.
 
분회장님은 어떤 경우인가요?
저도 그런 케이스에요. 2005년에 입사해서 27살인 2007년도에 처음 대의원을 했어요. 저는 보건직 임상병리사인데, 우리는 당연히 다 가입하는 분위기에요. 어떻게 가입했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나요. (웃음) 대의원도 1년씩 돌아가는 순번에 따라서 했어요. 2007년 대의원할 때 파업이 있어서, 앞서 이야기한 그런 코스를 밟았죠. 교섭에 나갔더니 내가 몰랐던 세상이 보였고, 이렇게 병원이 움직이는구나, 간부들이 정말 고생하고 있구나,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 2012년에 조직부장으로 처음 전임간부를 하고, 2013~14년에 사무장을 하고, 올해 1월부터 분회장을 하게 되었죠.
 
전임 분회장님과는 세대 차이가 많이 나죠. (웃음) 우리도 간부가 잘 수급되는 건 아니에요. 노조 간부 한다고 해서 혜택이 전혀 없고, 활동은 너무 원칙적이고 빡세죠. 야간근무해도 다음 날 쉬지도 못하고. 그래서 한번 한 사람은 떠나지 못하고 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힘들고 어렵지만 신념을 갖고 하는 거죠.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게 결국 신념이 되고 노조 활동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돼요. 
 
제가 처음 노조 활동을 하게 된 것도 당시 분회장님의 제안 때문이었어요. 윤태석 분회장님인데 지금은 현장에 있어요. 지금 분회장을 하게 된 것은 현정희 지부장님 때문이고요. 긴 시간 활동해오면서도 변치 않는 모습, 너무 힘든 상황인데도 삶을 즐기는 모습, 그리고 헌신적인 면, 그런 걸 보면서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느끼는 것 같아요.
 
분회장으로서의 포부와 각오를 말씀해주세요.
포부를 이야기하기에 지금 닥친 투쟁이 너무 긴박해요. 사측이 너무 어거지로 나오고 있거든요. 단협 해지해서 노조의 근간을 흔들겠다는 거죠. 하지만 이 투쟁을 잘하면 오히려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강력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병원 쪽에도 허점이 많아요. 불법도 강행하고, 비조합원들과 사측 관리자들에게까지 민심도 잃고. 단협 해지 가처분이랑 취업규칙변경 불법행위 소송까지 걸려있죠. 이번 투쟁으로 노동자를 무시하고 불법적으로 강행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줘야 해요. 노조의 근간을 흔들겠다는 거죠.  하지만 이 투쟁을 잘하면 오히려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장기적으로는 분회장으로서 간부들이 조금 더 즐겁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활동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는데, 이렇게 몇 년 하다보면 소진돼서 활동이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죠. 남들이 봤을 때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활동하는 게 즐겁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조합 활동하면서 자신의 발전도 이룰 수 있게 되는 게 필요해요.
 
우리 투쟁의 희망은 젊은 간부도 있지만, 젊은 대의원, 조합원들이에요. 지금까지 퇴근도 안 하고 일하고 있는 분들이 이렇게 있잖아요. 대단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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