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5/04 제3호
뉴욕에서의 한 철
열두 시간 동안 비행기 창가 자리에 갇혀서 점점 뻑적지근해지는 목을 돌리며 생각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때는 얼마나 홀가분할까?’
나는 공공운수노조와 북미서비스노조(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 SEIU)의 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조직화 사업에 관한 연수를 위해 뉴욕에 약 3개월 간 머무르고 있다. 뉴욕지역 공항 조직화 사업인 <Big Apple(뉴욕시의 별칭) Area Airport Workers Take a Stand>에 결합하면서, 동시에 신규 활동가 및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조직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이 나의 주요한 일과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 만연하다. 또한 이러한 일자리들이 거의 간접고용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같다. 하청업체들이 중간착취를 한다는 점, 업체가 바뀔 때마다 노동자들은 명찰만 바꿔가며 같은 일을 한다는 점, 업체들은 입찰을 위해 남들보다 더 낮은 임금을 주며 노동자들을 부려먹으려 한다는 점도 세계 공통이다. 욕 나오게 똑같은 상황 덕분에(?) 영어 대화에 능숙하지는 않지만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은 많은 기업들의 본사가 있는 중심지다. 따라서 미국에 본사를 둔 초국적 기업이 다른 나라로 진출해 문제를 일으키고, 해당 나라의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다면, 연대를 위해 미국의 노동자들이 본사를 타격하는 항의행동을 전개한다. 또한 같은 기업에 소속된 여러 나라의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노조 일정이 없는 주말에는 때때로 지인들을 통해 다양한 집회나 행진에 참가했다. 반핵운동의 일환인 평화 행진(Peace Walking)에 갔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뉴욕에서 차로 1시간 30분정도 떨어진 피크스킬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아름다운 강과 산을 마주한 이곳에 핵발전소가 하나 있다. 피크스킬은 도심과 매우 근접한 곳이기 때문에, 혹여나 핵발전소에서 사고라도 난다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바로 피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이 원전의 가동을 멈추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평화 행진을 이어간다. 참가자들의 절반 이상이 일본인들이었다. 후쿠시마 사고 후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반핵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뉴욕에서 만난 한 활동가가 내게 말했다. 자본에게는 국경이 없으니 노동운동도 그래야하지 않겠느냐고. 맞다. 자본은 전 세계를 자기 무대로 삼는다. 핵발전소로 인한 위험 앞에서도 국경은 무의미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운동이 글로벌해져야 하는 이유다.
뉴욕은 한국보다 늦게 겨울을 보내고 늦게 봄을 맞는다. 뉴욕에서는 이제 겨우 봄이 고개를 드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겠지? 귀국을 일주일 앞둔 지금, 홀가분한 마음보다는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로 인한 부담감과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한국행 비행기 편의 좌석은 복도 쪽이라는 점이 유일하게 나를 기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