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만나다
  • 2015/03 제2호

진보재편, 진보정치의 우경화와 고립 막기 위한 것

노동당 나경채 대표를 만나다

  • 인터뷰, 정리 구준모 편집실장
  • 만난사람 나경채 노동당 대표
노동당 나경채 대표와 구준모 <오늘보다> 편집실장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하면서 소위 진보 다당제 시대가 시작됐다. 그 후 여러 차례 합종연횡과 분열의 과정이 있었다. 최근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이하 국민모임)’이 출현하고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몇 년 사이 가장 떠들썩하게 진보재편론이 대두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운동, 노동운동 쪽에선 여전히 냉소적인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여럿으로 갈라진 진보정당들이 정치 현안 대응이나 정책, 선거에서의 가능성, 또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연대하는 과정에서 “이래서 진보정당이 정말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단지 선거 성적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정치의 방향으로 사회를 변혁하겠다는 포부가 드러나야 하는데 2008년 이후의 모습은 긍정적인 점수를 받기 어렵다. 이것은 어디는 잘했는데 어디는 실패했다는 식으로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진보정치의 지형과 조건이 계속 후퇴하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몇 년 대중적으로 박수 받을만한 성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지방선거에서 4개의 진보정당이 받은 정당득표율 합계가 9.2퍼센트였다. 언론에서는 ‘몰락, 쇠락, 학살’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하지만 과거 민주노동당 최대치가 13퍼센트였는데 여전히 10퍼센트 가까운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존정치가 아니라 진보정치가 잘해주기를 바라고, 진보정치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을 유의미하게 봐야한다. 다만 진보정당들이 이런 지지를 온전히 정치적 자산으로 삼지 못한 것은, 노동당·녹색당·정의당·통진당 4개의 정당으로 지지율을 쪼개서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경제 문제, 사회현안에 대해 어느 하나의 정당이 주도적으로 풀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결자해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진보정치가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 현실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운동이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이냐는 비전에 입각한 ‘결집’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녹색당처럼 독자적 성장 경로를 설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각의 정당이 이미 2008년 이후 그런 경로를 가졌다가 실패한 지금의 상황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보정당 간 차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진보정당에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사람들이 대체로 바라는 것은 진보세력이 힘을 합쳐서 결집하는 방향이라고 본다. 
진보정치가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 현실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결자해지라는 게 뭘 의미하는 것인가?
 
내년부터 중요한 선거들이 줄줄이 있고, 이를 통해 이후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이 규정될 것이다. 그 이전에 진보진영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과 조건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게 조직 통합의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자기 노력을 대중들에게 1년 사이에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진보정치가 결합되어야 한다는 걸 이야기 한 것이다. 이용길 전 대표 시절 노동당 기획실에서 지방선거 이후 당의 성장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아보자고 했는데 실패했다. 진보결집을 전제하지 않고 독자적인 성장 경로를 무엇이든 찾아보자고 했지만 매우 어려웠다.
 
정의당은 원내 정당으로서 5석의 자산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건에서 살아남으려면 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여길 수 있다. ‘민주당과 손을 잡는 것’, 즉 선거연대인데, 그 조건은 대선일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를 민주당과의 공동의 목표로 하고 총선에서 전면적인 야권연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정의당의 우경화를 우려하는데, 진보정치 상황이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면 노동당은 더 어려워질 것이고, 정의당은 생존을 위해 민주당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어려워진 노동당, 더 우경화된 정의당. 이렇게 되어 대선에서 만약 야권이 정권교체에 성공한다면, 진보정치로서는 당분간 정치적 방식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역동성을 표현해보겠다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노동당 선거에서 저는 단지 진보결집만 주장한 게 아니라, 제1야당을 교체함으로서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분명히 하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것을 해내기 위해 진보정치 전반이 생존할 수 있는 공통의 조건으로서의 자기 기반을 변화시켜야, 진보정치의 우경화도 막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야권 교체, 제1야당 교체라는 표현이 민주당을 대체할 수 있는 ‘중도진보’를 하자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는데 뉘앙스 차이가 있다.
 
그런 건 아니다. 민주노동당을 돌아보면, 진보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하는 과정에서 제3정당에서부터 가능성을 보여주고 일부 지역에서 지방정권을 창출하고, 그걸 통해 무능력하다거나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오해를 대중적으로 불식시키고, 사회운동과의 결합 속에서 성장해나가겠다는 것이 소위 ‘삼분지계’ 시나리오였다.

지금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제1야당 교체라고 달리 이야기한 것은 본질적 의미가 달라졌다기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가깝다. 노동당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운동 진영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같이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 처음에는 바짝 죽어있던 정권이 두세 달 지나니까 안전문제를 강화하겠다면서 도리어 민영화를 들이밀었다.
 
불행히도 사회운동은 여기에 무기력했다. 큰 사건·사고 후에 이것이 거꾸로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용되지 대중의 역동성이 표현되는 방향으로 가진 않는다는 점에 대한 전반적인 패배감이 있지 않나? 이를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우리 모두 후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고, 그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패배주의나 냉소주의가 있다. 비전을 갖고 운동을 만들어가지 못하고 즉자적 대응만 하게 되는 상황에서, 노동당 당원들뿐만 아니라 활동가들, 진보적 시민들이 기존의 보수양당 체계를 넘어서고 진보정당이 제1야당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 뭔지 역동적으로 고민해보자는 이야기를 던지고 싶었다. 물론 진보정치 결집이 아닌 기획도 나와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아직 그런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진보재편의 필요성에 동의하더라도 대중적이고 유의미한 진보정당은 사회운동의 성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잘 될까 의심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은 동반성장해야 하는 공동운명체다. 만약 양자의 관계를 단절하면 지속적인 오른쪽의 길, 그 끝에는 ‘왜 (민주당과) 따로 있니?’라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이) 함께 가려 할 때 어떤 경우엔 사회운동이 진보정치를 견인하거나 많은 영감을 주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정과 지원이 없다면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 한미 FTA 투쟁 국면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 밖에 안 되고 다른 당은 별 관심이 없을 때, 정치적으로 당의 명운을 FTA 저지에 걸면서 여론지형을 50대50으로 조직했다. 무수한 투쟁, 여러 대중운동조직과의 동반 행보 속에서 일시적으로나마 FTA가 추진되는 걸 막았던 것이고, 그런 점에서 어떤 때에는 진보정치가 사회운동의 성장 발전을 돕는 측면도 있는 거다.
 
 
진보정치 역시 스스로 난맥상을 뚫으며 사회운동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해보겠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사회운동도 굳건하게 성장하고 전략적 판단을 하면서 진보정치를 견인하려는 노력을 확고히할 필요가 있고, 진보정치 역시 스스로 난맥상을 뚫으며 사회운동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해보겠다는 자기 결의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진보정치에서 이 복잡한 문제의 단초를 만들어보겠다는 심정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다. 각각의 그런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지난 연말 우리가 목격한 풍경 중에, 박수를 쳐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쓰린 경험이 씨앤앰 비정규직 투쟁 마지막 날 풍경이었다. 잘 투쟁해서 성과를 얻었지만 그 옆에 함께 서 있었던 정치인은 새정치연합의 우원식이었다. 노동조합운동은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문제가 없는 건지 되물어야 한다. 사업장 현안이 생겼을 때 공식적으로는 노동당이나 정의당에도 논평을 요구하거나 공대위 참여를 요청하지만 실제적인 문제 해결은 민주당 의원들과 하는 방식이 굳어진 지 오래되었다. 진보정당도 속수무책이고 민주노총도 점점 문제의식이 없어졌다. 이것이 우리 모두를 위해서 괜찮은 것인가?

물론 왜 민주당을 옆에 세웠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실적 조건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이런 게 지속되었을 때 사회운동진영의 정치의식,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치가 어디로 갈 것이냐는 불을 보듯 뻔하다. 희망연대노조를 보면 조합원 모두 너무나 열심히 투쟁하고 지역사회운동과 결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은 은수미, 장하나다. 이런 쓰라린 장면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회의에서 ‘정치이야기는 골치 아프니까 하지 맙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노동자들에게 정치가 ‘골치 아픈 것’으로 치부되면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고 우리는 현안만 해결하면 된다는 식으로 갈 것이다.

동반 후퇴 국면을 동반 성장으로 반전시킬 계기를 노동운동·농민운동·정당운동이 모두 고민해야 한다. 우리로부터 물꼬를 어떻게 터볼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진보정치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현재 진보재편의 방향이 최선이라고 본다.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이하 ‘추진위’)가 내년 1월에 창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진보재편 상황에서 왼쪽을 최대한 끌어보겠다는 메시지도 있다고 본다.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노동당은 2012년 가을 추진위와 공식적으로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논의한 바 있다. 그게 안 된 결정적 이유는 그쪽이 추구하는 당이 선관위에 등록하지 않는 비제도정당이라는 점이었다. 현대적·대중적 진보정당이 필요하고 가능한 지금 시기에 비제도정당을 지향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20세기 초반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도 그래야 한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정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노선을 통해 대중에게 약속을 하고 그것의 성과를 만들면서 선거든 아니든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의 판단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정치를 엄격하게 바라보는 것은 정치가 매우 중요한 것, 타인의 삶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개입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반 후퇴의 국면을 동반 성장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모두 고민해야 한다.

그분들이 계급정당을 추진하겠다고 한 지 언 10년이 넘었다. 그때마다 항상 지금 당장이냐 내년이냐는 논의를 한 거로 알고 있다. 이것이 왜 반복되는지에 대한 해명과 고민도 필요하다. 그래야 이번에 꼭 하겠다는 말이 신뢰받을 수 있다. 진보결집에 많은 세력이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계급정당추진위나 녹색당과 같이 독자적인 길을 가고자 하는 세력도 자기 길을 현실화하기를 기대한다.

 
국민모임이 핫 이슈다. 아직 실체가 뚜렷한 것 같지는 않다. 민주당보다 약간 진보적인 새 정당을 만들자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초반에 국민모임을 주도했던 분들이 어찌하여 이런 형태까지 오게 되었나를 돌아보자. 작년까지만 해도 이분들은 노동당, 정의당, 노동정치연대, 민주노총을 통해 사회운동세력과 함께 새로운 진보정당을 대중적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작년 가을 이후 이 논의가 중단됐다. 운동 내부의 합의나 토론만으로 어렵겠다는 판단하에, 다소 이질적인 이들과 접촉하여 충격과 바람을 활용해서라도 진보정치의 다른 지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고민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작년에 논의 중단의 계기를 제공한 정당이 노동당이기도 해서 원죄가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진보정치 재편과 재건에 대한 대중적 기대가 형성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노동당을 비롯해 이 논의의 주체들이 국민모임이나 정동영 세력에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 전략이 필요하다. 논평자의 자세로는 곤란하다. 어떤 방식으로 그들이 진보정치에 서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내부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진보재편이 잘 되려면 노동당 그룹의 토론과 자산이 중요하다. 어떻게 추진할 계획인가?
 
노동당은 과거 당명이 진보신당이었을 때 진보정치 통합에 대한 결정을 둘러싸고 주요 정치인과 수천 명의 당원이 탈당하는 등 매우 깊은 내상을 입었다. 그 과정을 누구든지 교훈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그때와 상황이 같진 않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추진하는 진보결집을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당 내부 절차와 민주주의 원칙하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최대한 많은 토론, 내부의 의결기구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보장하면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노심조(노회찬, 심상정, 조승수)가 하지 못했던 민주적 과정과 절차에 입각한 결집과 통합을 하겠다는 것이 노동당 대표로서 갖는 포부다. 이를 통해 진보정치의 리더십도 생기고 진보정치의 새로운 주인공도 탄생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동시에 진보정치 결집과는 별개로, 우리당을 강화시키고 총선준비를 차질 없이 준비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해나갈 계획이다. 당원들이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겠다.
 
진보정치의 결집을 기대하는 노동자, 활동가, 청년들도 우리 당을 향해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한다. 적지 않은 분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거 같지 않다’고 말한다. 그 태도나 바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마냥 기대하는 게 아니라 좋은 당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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