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조 할 권리
  • 2015/03 제2호

협박하는 회사, 웃음으로 똘똘 뭉친 노동자

이기만 두원정공 수석부지회장 인터뷰

  • 인터뷰, 정리 김유미 오늘보다 편집실 기획국장
  • 만난사람 이기만 금속노조 경기지부 두원정공지회 수석부지회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는 안녕할까?

지난 몇 년은 쌍용차, 발레오만도, KEC, 상신브레이크, SJM 등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주요 사업장에서 구조조정 및 노조 파괴 시도가 이어진 시기였다. 자본은 노조 파괴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아 노동조합을 도발하고, 긴 투쟁 속에 고립시켰다. 많이들 흔들렸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곳도 있었다.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청소년 알바생 뿐만 아니라, 20년 이상 노조를 유지해온 금속노조 정규직 아저씨들도 ‘노조 할 권리’를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2014년의 두원정공에 주목해 보자. 두원정공 지회는 직장폐쇄까지 감행한 회사 측의 노조 파괴 시도에 맞서 두 달 간의 파업으로 투쟁에 승리했다.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두원정공 공장에서 만난 이기만 수석부지회장은 승리의 비결이 ‘단결’이라 말한다. 단결이라니, 너무 단순하고 뻔한 답이 아닌가. 그러나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전혀 뻔하지 않았다. 두원정공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의 ‘뻔함’을 잊을 만큼 눈부시게 투쟁했고, 승리했다.
 

늘 위기를 말하는 회사

두원정공은 자동차 디젤 엔진에 들어가는 펌프를 만드는 회사다. 최근에는 매연에 대한 환경규제 때문에 기계식 펌프 대신 전자식 펌프가 많이 사용되면서 두원정공의 기계식 펌프 생산은 사양 산업이 되었다. 이기만 수석부지회장은 “국내에선 기계식 생산은 완전 중단되었고, 여기서 만드는 건 아직 그 환경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국가에 수출하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하던 회사는 산업구조 변화와 함께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금 매출은 가장 잘 나갈 때의 반 정도로 줄어든 상태이고, 인원도 반으로 줄어 57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1995년도 이후에 신규 입사가 없었어요. 거의 20년 동안 한 명도. 평균연령이 지금 50세 조금 넘었을 거예요.” 회사는 회사가 망한다, 위기다 하는 말을 버릇처럼 했다. 구조조정의 여파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600여 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불안을 떨치고 민주노조 시작

불안에 떠는 생활을 더는 못 견디겠다는 마음이 모여 두원정공에도 ‘민주노조’가 세워졌다. “노조는 87년도 노동자대투쟁 때 만들어져 한국노총 소속으로 있었는데, 민주노조로는 2002년도에 전환했어요.” 그러자 회사는 강성노조, 빨갱이 때문에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악선전을 시작했다.
 
“현장에선 굉장히 불안해했죠. 정말 망하는 줄 알고. 실제로 물량이 이동하는 과정이 있었으니까 우리[노동조합 지도부]도 고민이 되긴 했어요. 고민하다가, 한 번 싸움을 제대로 해서 진짜 망하는지 확인해 보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성과급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따냈죠. 이 회사 망하지 않는 회사니, 기죽지 말고 요구할 건 요구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2002년의 투쟁은 민주노조 운동의 탄탄한 토대를 세우는 과정이었어요.”
 
2003년에 이어진 근골격계 질환 산재 인정 투쟁도 조합원들의 의식을 끌어올리고, 노조의 필요성을 분명히 한 경험이었다.
“물량이 줄어드니 회사는 사람을 줄이려 하잖아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을 했었는데, 그 고리로 근골격계 투쟁을 잡은 거죠. 현장은 너무 힘들어서 노동자들이 병들고 있는데 사람을 자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논리인 거죠. 많이 아픈 사람들부터 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았는데 처음에 20명 넘게 산재 승인을 받았고 그 해에 98명이나 산재가 나왔어요. 그만큼 현장이 힘들었던 거죠. 회사가 인원이 줄어들고 나니 라인을 변경해서 노동강도를 높이는 식으로 하고 있었거든요. 이후에는 회사가 사람 자르자는 말을 함부로 못해요.”
 
3월호 '단결툰'  주인공 주석재 사무장(좌)과 '노조 할 권리'의 이기만 수석부지회장(우)
 

10년 뒤, 회사가 반격에 나서다

회사가 ‘직장폐쇄’라는 카드를 들고 반격에 나선 것은 민주노조가 세워지고 딱 10년이 지난 2012년도였다. 이기만 수석부지회장은 그해 8월, 회사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기억했다. “교섭 내내 잘 해보자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회사 망한다는 얘기를 하면서 직장폐쇄를 시도한 거죠. 직장폐쇄 한다니까 정말 회사 망하는 줄 알았고, 공포도 컸어요. 옆에[평택에] 쌍용차가 있고 그 투쟁을 봤으니까요. 노동조합은 싸울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현장에 굉장히 큰 충격이 있었어요.”
 
이후 회사가 양보교섭안을 요구했는데, 불안한 노동자들은 과반이 그 양보안을 받자고 주장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양보안을 받아들인 2012년의 경험은 노동조합에 큰 패배감으로 남았다.
 

지도력의 회복, 관계의 회복

이기만 수석부지회장은 “이러다간 노조가 깨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최초로 민주노조운동을 시작했던 지도부가 다시 나와서 전체 지도력을 세우고 회사의 도발을 힘 있게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제안을 했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 지회는 그의 제안대로 민주노조 초기 지도부를 불러 지도부와 집행부를 구성했다.
 
2014년이 되자 회사의 도발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연월차 수당을 1월 말에 줘야 하는데 갑자기 6월까지 분할지급 하겠대요.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일부러 현장의 위기와 갈등을 조장하는 거죠. 그래서 노조는 분할지급안을 받지 않고 특근을 거부했어요. 그랬더니 특근을 거부했단 이유로 지회장을 해고하더라고요. 구조조정을 하려는 의도가 너무 명백한 거죠.”
 
지도부의 가장 큰 고민은 공포와 불안을 넘어 조합원들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직장폐쇄와 투쟁 장기화에 대비한 탄탄한 조직력이 필요했다. 그를 위해 생각해낸 것이 바로 소규모 ‘분임조’의 편성이었다.
 
“회사가 재고를 3개월 이상 확보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있었고, 그래서 전면 파업을 3개월 넘게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걸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력을 만들 어야 하는데 방법은 분임조밖에 없다는 거죠. 다섯 명에서 일곱 명을 넘지 않도록 촘촘하게 조를 만들고 교육, 토론하는 작업을 쭉 했어요.”
 
분임조 활동을 하며 노동조합이 현장에 던진 화두는 ‘행복’이었다. 위기와 구조조정이라는 아픈 과정을 겪으며 현장에는 동료들과 말도 잘 안 하고, 자기 일만 끝내고 집에 가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우린 왜 일하면서 행복하지 못하냐?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회사는 항상 구조조정 한다 하고, 우리는 불안하고, 동료와 관계도 별로 좋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공장 안에서 보내는데 우리는 공장에서 너무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이런 메시지요.”
 

정품생산운동, 회사의 주인이 누군지 확인하다

지회장이 해고된 후 현장은 ‘정품생산운동’을 벌였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준법 투쟁(각종 원칙을 평소보다 엄격하게 지키며 일함으로써 합법적으로 작업능률을 저하시켜 회사를 압박하는 투쟁의 수단)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기만 수석부지회장은 2014년 정품생산운동의 의미는 이전과 약간 달랐다고 말했다.
 
“회사가 품질을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싸게 생산하고 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거든요. 공구도 싼 것만 들여오고, 부품도 불량이든 말든 일단 들여와 생산하고 보자는 태도였어요. 그러면서 강성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는 선전을 하고 있으니, 진짜 누가 회사를 망하게 하는지 보자,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선점하는 과정이었던 것이 핵심이에요. 불량이 아닌 정품만 생산하자. 실제로 관심 가지고 확인해보니까 정말 심각하더라고요. 회사가 정말 엉망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죠. 우리야말로 이 회사의 주인이다. 우리가 만드는 거다.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과정이었어요.”
 

경영분석을 통해 회사의 논리를 뛰어넘다

회사는 ‘강성노조 때문에 두원그룹이 두원정공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10년 이상 해 왔다. 노조만 없으면 대단한 투자를 해서 회사가 발전할 것처럼 얘기를 하니, 노동자들은 괜히 불안해졌다. 회사의 논리를 돌파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두원그룹 전체의 경영을 분석해 보았다. 경영분석이란 ‘회사나 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생각을 깬 것이다.
 
경영분석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두원그룹이 두원정공 외 다른 계열사에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른 계열사에도 똑같이 투자를 안 하고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윤만 뽑아내고 있었어요. 그게 경영 스타일이더라고요. 노조 때문에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더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두원공조 같은 경우에는 투자를 해서 품질을 안정시키면 엄청나게 클 수 있는 회사인데 그걸 안 해서 위기로 가고 있는 거죠. 경쟁사인 한라공조는 물량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데, 두원공조는 불량률이 높으니 물량을 잘 안 줘요. 경영분석을 하면서 그런 게 확인되고 현장의 분노가 더 커졌죠.”
 

직장폐쇄에도 흔들리지 않는 투쟁

충분히 예상했고, 우리가 정당하다는 것이 분명했으므로 회사가 직장폐쇄를 선언했지만 지회는 기다렸다는 듯 기세 좋게 대규모 선전전과 안성 시내에서의 집회를 이어갔다.
 
결국 회사는 금방 직장폐쇄 철회를 선언했다. 노조가 흔들릴 기미가 없는데다 노동부, 시청, 경찰, 지역 유지 등 각계각층이 우려를 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폐쇄를 철회한 회사는 교섭도 없이 3주의 시간을 끈다.
 
“쟤네가 하는 행태가 이상하다. 다시 직장폐쇄 할 것 같다. 그걸 확인하려고 설비를 가동시킬 수 있는 상태로 준비해보기로 했어요. 설비를 오래 세워 두면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사실 과거 같으면 상상을 못할 전술이에요. 전면파업 가고 있고, 회사에서 아무 것도 내놓지 않았는데 가동 준비를 한다는 것은요. 원래 노동자들의 파업전술이 유연하지 못하거든요. 약간 양보하고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 현장이 불안해지기 때문에 그렇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조직력과 지도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비 재가동 준비를 하니 회사는 또다시 직장폐쇄를 선언했다.
 
두 번에 걸친 회사의 직장폐쇄 선언은 저들의 목적이 ‘회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깨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노동자들의 분노와 조직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계열사 비정규직을 조직하자

두원정공 지회의 행보 중에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파업 도중 노동조합이 없는 두원그룹의 다른 계열사 공장 앞에 가서 조직화 사업을 벌인 일이었다. 내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어떻게 광주, 인주(충남 아산) 지역까지 찾아가 다른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뛰어들 수 있었을까?
 
“10여 년 이상 구조조정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게 답이 없이 계속 싸워야 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몰렸는가 하니 정규직 노동자들이 너무 고립되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립된 소수의 조직된 노동자들을 자본이 끊임없이 괴롭히고, 끝까지 밀어붙여서 노조를 깨려고 하는 구조에 우리가 놓여 있다. 이 싸움을 근본적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주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결론을 내린 거고요. 경영분석을 해보니 다른 계열사들도 똑같이 투자를 안 하고 있으니까, 계열사 노동자들도 우리랑 똑같이 불안하고 어려울 거다. 조합원들이 계열사 노동자들의 문제가 자기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 거예요. 이전 같았으면 전혀 동의가 안 되었을 텐데.”
 
선전전을 하고 계열사 노동자들과 만나 직접 확인해보니 공장도 여럿으로 나뉘어 있고, 비정규직이 90퍼센트에 달하는데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외국인 노동자가 과반이 넘었다. 이기만 수석부지회장은 “생각보다 훨씬 조직하기 어렵게 해놓았다는 걸 확인했어요”라고 말했다. 단기간에 성과를 볼 수는 없었지만 노동조합을 고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지역의 민주노총 금속노동조합을 소개해주었던 경험은 두원정공 조합원들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노동자들은 두원정공의 주인을 넘어 두원그룹의 주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두원정공 노동자들은 계열사에도 노조가 세워지는 것이 싸움의 근본적인 해법이라
보았다. 그래서 두원그룹의 계열사인 두원냉기 공장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신나게 싸우고 승리하다

공장 밖으로 나와 안성 시내에서 시민들과 호흡하며 투쟁했던 것, 두원그룹이 세운 두원공대 캠퍼스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했던 것, 부회장이 사는 타워팰리스 앞에 찾아갔던 것은 조합원들에게 새로운 경험인 동시에 투쟁 승리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생산만 멈추면 됐어요. 공장을 세우는 게 엄청난 위력이었던 거죠. 그런데 회사가 이 싸움을 위해 재고를 엄청 쌓아놓은 상태잖아요. 공장을 멈춰도 큰 타격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의 투쟁이 필요했던 거죠.”
 
그러나 누가 뭐래도 가장 큰 힘은 바로 조합원들의 자신감, 자발성, 그리고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단결력이었다.
 
지회는 분임조에게 ‘투쟁지침’을 내리지 않았다. 분임조 별로 모여 토론해서 그날 몇 시간 파업을 할지, 파업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하도록 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난생 처음 파업 프로그램을 짜려니 머리에 쥐가 나는 거죠. 처음엔 지침만 주면 될 것을 왜 힘들게 하냐는 불만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달라지더라고요. 자기 문제를 자기가 결정하고 결정한 대로 가고, 적극적으로 토론하면서 문제의 본질에 더 접근하게 되고, 기존에 못 느꼈던 것들을 확인하게 되면서 적극적인 싸움꾼들이 되어갔어요. 굉장히 자율적이면서도 위력적인 투쟁이 그래서 가능했어요.”
 
파업 기간 같이 밥을 먹고 토론하고 놀고 투쟁하며 자연스레 인간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졌고, 분임조는 행복한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두원정공 노동자들은 한 목소리로 ‘노조활동을 하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다시 없이 신나게 싸운 결과 회사는 손을 들었고 지회는 소중한 승리, 정말 ‘내 것’인 승리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두원정공의 2014년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두원정공의 경험은 노조 파괴와 구조조정의 위협에 시달리는 모든 노동조합에 적용할 수 있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두원정공 사측은 대량해고나 극단적인 폭력이라는 카드를 쓰지 않았다. 아마도 두원정공의 문제가 쌍용차의 정리해고처럼 사회적 쟁점이 되거나, 노동자에 대한 용역깡패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SJM처럼 도덕적 비난을 받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원정공의 투쟁 경험은 먼저 노조 파괴 시도를 맞닥뜨렸던 사업장들의 치열한 투쟁에 빚지고 있는 바가 있다.
 
생산하는 제품의 특수성도 있다. 사양 산업이라 할지라도 독점 품목이기 때문에 교섭력이 있으며, 독점 품목이라 할지라도 사양 산업이기 때문에 새롭게 시장에 뛰어드는 경쟁사가 없다. 어쩌면 두원정공의 승리는 여러 조건이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원정공 투쟁에는 눈여겨보고 배울 바가 적지 않다. 먼저 회사가 유포하는 논리를 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그렇다. 지회는 ‘우리가 정당하다’는 강변이 아니라 정품생산운동을 통해, 경영분석을 통해 치밀하게 투쟁의 정당성을 확인했다. 또한 좋은 관계로 똘똘 뭉친 조합원들이 보여준 놀라운 자발성, 두원그룹 계열사 비정규직의 조직화 시도, 사회적인 지지를 만들기 위해 공장 밖으로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점 등은 10년이 넘는 오랜 연차의 노조가 흔히 빠질 수 있는 관성이나 보수성과는 대비된다.
 
조합원 570여 명,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경기도 안성의 한 공장 이야기인데 한국 노동운동이 처한 현실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긍정적인 ‘우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평균연령이 50에 이르는 이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은 밖에선 ‘귀족노조’ ‘철밥통’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끊임없이 구조조정의 위협에 몰려 자존감이나 운동에의 의지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다. 위기다, 망한다는 소리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반복해서 들어 왔다.
 
이런 조건에 처한 노동운동이 회사의 주인, 사회의 주인으로 거듭나 ‘즐겁게’ 일하고 투쟁할 수 있을까? 고립에서 벗어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걸 마음 깊이 깨닫고 주변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그래야만 해서 의무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게 너무나 행복한 내 삶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바로 두원정공 지회의 노동자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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