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여는글
  • 2015/03 제2호

시리자의 시간

  • 구준모 오늘보다 편집실장
 
유럽 변방에서 작은 좌파 조직이 출범한 것은 동구권 붕괴가 절정이던 1991년이었다. 사회주의를 버릴 수도 없고, 교조적으로 지킬 수도 없었던 그리스 좌파들이 결합하여 만든 시나스피스모스(좌파진보연합)의 이야기다.
 
1993년부터 2004년까지 그리스는 사회당이 장기 집권했다. 이들은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걸었던 길을 따라 사회 변혁이라는 목표를 팽개치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 2004년 그리스 사회당이 신자유주의로의 투항을 전면화하자 다른 좌파들이 시나스피스모스와 연합하여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을 결성했다. 그 결과 시리자는 2004년 선거에서 3.3퍼센트를 얻어 의회 진입 문턱 3퍼센트를 넘겼다.
 
이후 시리자는 좌파적 전략을 강화하면서 더욱 활력을 얻었다. 시나스피스모스는 시리자가 광범위한 신좌파를 통일하는 중개자가 되도록 했다. 그러자 그리스의 신좌파들은 공산당의 교조주의와 사회당의 신자유주의 순응주의 사이의 대안으로 시리자를 인정하게 되었다. 또한 좌파적 전략은 ‘권력이 없는 자에게 권력을 부여한다’는 원칙에 기초를 두었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지지하고 동시에 이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청년들에 대한 개방성도 시리자의 성장을 도왔다. 32세의 엔지니어였던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2006년 아테네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10.5퍼센트의 큰 성공을 거두고, 당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스의 경제 위기가 악화되자 시리자는 새로운 시험대에 놓였다. 2010년부터 그리스 각지에서 긴축에 반대하는 성공적인 총파업과 수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한 광장시위가 이어졌다. 시리자는 이러한 행동을 옹호하면서 꾸준하게 긴축정책과 트로이카(국제통화기금,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의 압박에 반대해왔다. 그리고 2012년 총선에서 ‘긴축 반대 좌파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시리자에 대한 지지가 급격히 높아졌다. 그리스 사회를 뒤흔든 새로운 의제를 설정한 것이다.
 
시리자는 그리스 민중들의 지지를 얻고 올 1월 말 총선에서 승리했다. 21세기 유럽에서 급진좌파정당이 집권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물론 앞으로는 더욱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 트로이카와 자본이 쏟아내는 엄청난 압력을 이제 시리자가 받게 된다. 불만의 물결에 대한 지지와 긴축정책 반대를 통해 얻었던 대중들의 신뢰를 집권 후에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좁아 보인다.
 
그러나 이미 시리자는 사회운동으로부터의 지지, 정세에 맞는 급진화, 개방적인 좌파 연대 전략의 현실성을 보여주었다. 지금 시리자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 민중과 좌파의 도전을 응원하며 바로 여기에서 변화를 만들자, 우리 미래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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