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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 창간호

한국 주택시장의 금융화 톺아보기

투기에서 투자로의 전환과 제대로 된 진보 전략

  • 이지웅 고려대학교 사회학 석사

주택투기?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주택담보대출 확대를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은 최근 들어 투기보다는 가계부채를 통한 주택가격의 상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토지+자유연구소, 참여연대 등 학계 및 시민단체들은 이를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주택투기’의 촉진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최경환의 주택시장정책을 비판하면서 투기자가 아닌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입장은 대체로 노무현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정책에 대한 옹호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완화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정작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주택정책은 투기수요를 타깃으로 하고 있지 않다. 정책문건을 분석해보면 두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주택금융을 이용한 ‘실수요자’의 주택구매를 촉진을 명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부동산학에서 주택투기는 단기적인 자본이득(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가(假)수요를 의미하고, 주택투자는 장기적인 소득이득(거주와 임대소득)을 목적으로 하는 실(實)수요를 의미한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만연했던 부동산 투기에 대한 인식 때문에 보통 실수요는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수요는 주택시장에서 이뤄지는 투자행위의 하나다. 실수요가 중심이 되는 주택시장도 가계부채 증가와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역대 정부에 의해 일관되게 추진된 주택금융 확대 정책과 금융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일이다. 정권과 관계없이 주택담보대출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기초자산으로 증권을 발행하는 증권화(자산유동화)와 부동산투자회사(이하 리츠)나 부동산펀드 등 새로운 금융수단이 도입되었다. 

주목해야할 사실은 금융 수익을 안정적으로 창출하기 위해선 투기보다는 실수요가 중심이 되는 주택시장이 적합하다는 사실이다. 주택으로부터 장기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발생시켜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담보대출의 표준적인 모델은 원리금을 10년 이상 고정금리로 분할하여 상환하는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이하 모기지)이며, 이는 실거주와 월세 형태의 임대에 적합하다. 이를 기초자산으로 할 때 증권화가 수행된다. 이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주택담보부증권(이하 MBS)이며, 리츠나 부동산펀드(리츠는 주식발행을 통해, 부동산펀드는 펀드판매를 통해 투자자금을 모집한 후 이를 부동산 시장에서 운용하여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분한다)의 경우엔 지속적으로 현금이 발생하는 월세를 선호한다.

반면 주택투기는 단기적인 자본이득을 얻기 위한 행위이므로 주로 짧은 기간 이자만 갚다가 만기에 원금을 일시 상환하는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증권화의 기초자산으로 부적합하다. 게다가 주택투기는 한국 특유의 임대차제도인 전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세금이 주택투기를 위한 레버리지(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하여 수익률을 높이는 행위)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고, 또 현금흐름을 발생시키지 않아 투자자들의 이해관계와는 맞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역대 정부의 주택정책은 김대중·노무현이건 이명박·박근혜건 주택금융을 확대하기 위해 주택시장을 투기가 아닌 실수요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다. 즉 문제는 투기가 아니라 ‘금융주도 주택시장’인 것이다. 금융적 수익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금융관료와 전문가, 투자자들은 더 많은 실수요자가 주택금융 시장으로 편입되는 것을 ‘주택시장 선진화’ ‘금융 민주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러한 변화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은 처음부터 순탄치 못했는데, 주택금융의 확대가 오히려 주택투기를 대중화했기 때문이었다.
 

‘금융주도 주택시장’ 형성의 역사

1997년 이전 한국의 주택금융은 매우 제한되었다. 정부가 금융자원을 산업부문에 우선적으로 할당하는 ‘관치금융’, 즉 금융을 규제하는 금융정책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금융은 주택은행과 국민주택기금을 중심으로,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심각해진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 금융을 중심으로 운용되었다. 대신 전세 제도가 비공식적인 주택 금융의 역할을 했다. ‘무이자’의 레버리지 수단 전세금을 통해 집주인들은 월세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주택시장에 투기를 했다.

경제위기 이후 진행된 ‘IMF 구조조정’은 금융의 이해관계에 적합한 형태로 한국경제를 재편하는 것이었다. 금융개방과 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시장이 성장했고 금융적 수익을 중심으로 기업·노동·공공부문이 구조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택 금융이 활성화되고 주택이 공식적인 투자자산으로 주목받았다. 주택담보대출이 금융기관에 전면 허용되었고, 증권화 제도가 도입되고 이를 담당하는 주택저당채권유동화주식회사(KoMoCo)가 설립되었으며, 리츠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확대된 주택금융이 주택투기 심리를 대중화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했다. 주택담보대출이 단기, 변동금리, 일시상환 방식 위주로 활성화되면서 MBS 발행은 오히려 감소했고, 전세 제도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통해 자산운용업(이른바 ‘펀드’) 육성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을 부양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주택시장을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택투기를 규제함으로써 투기수요를 주식시장으로 돌리고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하는 한편, 주택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한국주택금융공사를 설립해 ‘보금자리론’ 공급과 MBS 발행을 확대하고 부동산펀드를 새롭게 허용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주택담보대출이 증권화에 보다 적합한 형태로 변화하면서 전세는 월세 형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부동산 불패신화’가 작동하면서 주택투기도 지속되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시장이 위기를 맞으면서 금리가 올랐고, 이에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되고 집값은 떨어졌다. 변동에 보다 취약한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이 더 큰 영향을 받았다. ‘하우스푸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시장을 더욱 확대하는 ‘금융선진화 전략’을 통해 금융위기에 대응했고,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를 해결하기 위해 실수요를 촉진하는 기존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주택거래 활성화를 위해 거래관련 규제를 완화했고, 부실화된 주택담보대출을 해결하기 위해 이를 모기지로 전환하는 한편, 은행권 모기지인 ‘적격대출’을 새롭게 도입함으로써 MBS 발행을 촉진했다. 주택투기의 위기로 전세금의 유용성이 하락하면서, 전세의 월세화 속도도 빨라졌다. (이른바 ‘전세대란’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임대인이 전세공급을 줄이거나 전세금 운용수익의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전세금을 인상한 결과다.) 그 결과 주택가격은 다시 반등세로 돌아선다.
 
 

박근혜 정부의 주택정책의 본질과 금융주도 주택시장의 문제

박근혜 정부의 주택정책 역시 이와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실수요를 중심으로 하는 주택시장을 형성함으로써 ‘금융주도 주택시장’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2013년에는 국민주택기금과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참여시켜 모기지를 확대했고, 2014년엔 국민주택기금과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일부 상품을 통합해 ‘디딤돌 대출’을 출시하는 한편, 한국은행까지 나서서 MBS를 구매하도록 했다. 그리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기준금리를 더 낮추고 LTV와 DTI 규제까지 완화한 것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MBS 잔액 100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현 정부는 전임 정부와는 다르게 월세 받는 임대사업자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주택자나 리츠·부동산펀드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택거래가 활성화되고 주택가격의 상승세가 강화된다면, 금융위기 이후 주택구매를 망설였던 무주택자들도 움직일 것이라는 계산이다. 최근 논란이 된 ‘기업형 임대사업자’ 육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이처럼 정책수단을 계속 확대한 결과 최근 주택가격의 상승세가 강화되고 있다. 결국 주택가격의 상승이 안정세로 접어들면 무주택자들 중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계부터 모기지를 이용해 주택구매에 나서게 될 것이다. 10년 이상(심지어 20년, 30년 이상) 모기지의 원리금을 상환하면서 거주와 동시에 주택가격 상승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득증대 효과, 즉 ‘부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택의 단기적인 처분을 통해 시세차익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산가격의 상승을 통해 추가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것과 연관된다(물론 최종적으로 매각을 염두에 둘 것이다). 그리고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은 모기지에서 발생하는 장기간의 원리금 상환으로부터, 또 이를 통해 발행되는 MBS로부터 금융적 수익을 얻게 될 것이다. 한편 상대적으로 모기지를 이용할 여유가 없는 가계는 월세 형태의 임대주택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로부터 발생하는 임대수익은 기업형 임대사업자나 부동산투자자들의 수익으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이런 흐름은 MBS의 확대와 주식시장 성장으로 이어지면서 주택가격 상승을 가속화할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사회 전체의 합리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금융적 수단에 의존한 주택가격의 상승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택가격 상승과 실물경제 간 괴리가 확대될수록 거품도 커지게 될 것이고 수많은 금융위기가 증명했듯이 언젠가 거품은 꺼진다. 주택가격 하락이 현실화되는 순간, 가계는 모기지를 계속 상환하기보다는 매각에 나서게 될 것이다. 취약 계층에서부터 채무불이행이 시작되면서 금융시장이 위기에 빠질 것이고, 이는 실물경제를 위축시키면서 심각한 경기후퇴를 발생시킬 것이다.
 

주거는 투자자산이 아니라 권리다

결국 우리는 ‘투기’라는 문제제기를 지양하고 주택을 금융의 이해관계에 맞는 투자자산으로 변형시키는 ‘금융주도 주택시장’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주택이 투자자산이 아니라 주거를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주택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금융정책이 아니라, 주거권을 보장하는 사회정책이다. 주택금융은 규제되어야 하고, 가계부채는 축소되어야 하며, 주택가격은 하락해야 한다. 더 많은 공공주택의 건설과 주거보조를 통해 주거비 부담을 감소시켜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금융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민중들의 권리에 봉사하는 거시 경제정책을 요구해야 한다. 무제한적인 권력과 고소득 추구를 보장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서 탈피하여, 실물투자와 고용확대를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민중 주도의 경제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금융 헤게모니에 맞선 정치적 세력관계의 형성에 달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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