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5/02 창간호
보수는 어떻게 득세했나
노무현부터 박근혜까지의 보수주의
노무현 정부: 보수의 위기와 뉴라이트 부상
2004년 봄은 보수 세력에게 힘든 계절이었다.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확신했던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지만 역풍을 맞고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과반의석을 허용했다. 원조보수를 내세웠던 자민련(자유민주연합, 김종필 등이 중심이 되어 1995년부터 2006년까지 활동한 보수 정당)이 4석에 머물러 몰락하고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약진한 것도 뼈아팠다.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으로 뉴라이트가 부상했다. 2004년 11월 신지호가 주도한 ‘자유주의연대’가 창립됐고, 이에 맞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대대적인 뉴라이트 띄우기에 나섰다. 이들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낡은 이념과 대중선동형 포퓰리즘”에 몰입하는 “수구좌파”로, 한나라당을 “기득권유지에 전전긍긍하는 기회주의적”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2005~06년에 ‘교과서포럼’ ‘뉴라이트 네트워크’ ‘뉴라이트 전국연합’ ‘뉴라이트재단’ 등 뉴라이트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결성되었다. 뉴라이트 운동이 부흥하자 올드라이트라고 불린 기존의 보수 지식인과 운동도 여기에 가담했다.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비정당적 보수 세력이 결집한 것이다.
뉴라이트에는 신지호 같이 전향한 386운동권이나 김진홍 목사 등 반독재민주화운동 인사, 박세일 교수 같은 자유주의적 보수 학자들이 참여하였다. 뉴라이트 기치 아래 전통적인 안보(반북) 보수 세력과 자유주의적 보수 세력이 결합했다.
뉴라이트가 이렇게 단기간에 성장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보수 세력의 강한 위기감이 변화와 결집의 필요성을 강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지속된 보수의 지배가 흔들린 건 김대중 정권 때였다. 그래도 김대중은 김종필과 연합하여 집권했기 때문에 보수도 어느 정도의 권력 분점을 이룰 수 있었다. 반면에 예상치 못한 노무현의 집권은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사회의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확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향한 386이나 시민운동가,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다 돌아선 지식인들은 진보 진영의 ‘실상’을 고발하는 데 유능했고, 이들이 주장하는 보수주의의 혁신에 ‘신뢰’를 부여했다.
대선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형성된 약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던 노무현 정부의 거듭된 실패도 뉴라이트 성장의 거름이었다. 보수 세력은 노무현을 포퓰리즘으로 비판했다. 한나라당과의 연정 제안과 같은 개인적 기지에 기반을 둔 정치는 국민들을 피로하게 만들었고, 가감없는 언사는 막말 논란을 낳으며 포퓰리즘 딱지에 설득력을 더 해주었다. 큰 변화를 기대했지만 비정규직의 확산과 팍팍한 삶의 지속이라는 현실은 김대중 노무현으로 대표되었던 민주화 세력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실용과 성장을 대변하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 대북 이슈와 종북 프레임
뉴라이트 진영은 2007년 한나라당의 당내 경선에서부터 이명박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명박도 대통령 당선 직후에 뉴라이트전국연합 송년회에 참석해 감사를 표했을 정도였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많은 뉴라이트 인사들은 한나라당과 정부를 통해 정치권에 진입했다.
김성회 뉴라이트경기안보연합 대표, 장제원 뉴라이트부산연합 대표,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조전혁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대표 등이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18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인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 박영모 전국연합 조직국장, 한오섭 전국연합 기획실장은 각각 인권대사,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 청와대 언론1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됐다.
그런데 뉴라이트 인사들이 정권에 참여하자 뉴라이트 운동은 사그라졌다. 권력을 장악한 마당에 길바닥에서 운동을 할 일이 뭐 있겠나. 권력을 장악한 보수는 이제 ‘좌파’를 축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정권은 ‘PD수첩’을 고발하고, 진보적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을 끊고 사찰했다. 김미화, 김제동 같은 방송인마저 수난을 당했다. 인권위원회의 주요 사업에 북한인권 감시가 포함되었다.
한편 국정원과 극우 인사들은 좌파를 축출하기 위한 새로운 담론을 개발했다. 국정원은 2009년 《반대세의 비밀》이라는 책을 펴냈다. 종북을 기준으로 ‘대세’(대한민국 세력)와 ‘반대세’(반대한민국 세력)를 나누고, 반대세를 제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조갑제나 뉴데일리 같은 보수 세력들은 이 프레임의 유용성을 포착하고 ‘종북세력’은 물론이고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까지 모조리 반대세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명박 집권기에는 북한 관련 이슈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2008년 금강산 총격 사망, 2009년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2011년 김정일 사망, 2012년 3차 핵실험 등의 큰 사건들이 이어졌다. 이명박 정권과 보수 세력은 이를 이용해 적대적 대북 정책을 정당화하고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강화시켰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사회화된 종북이라는 용어는 보수 세력이 활용하기에 더 없이 좋은 프레임을 제공했다.
박근혜 정부: 안보 보수 득세의 지속가능성
박근혜는 전통적 안보 보수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1987년 이후 가장 오른쪽에 앉아있는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의 특징은 집권 초 인사논란에서 드러났다. 김기춘, 남재준과 같이 박정희 정권에서 활동한 얼굴들이 다시 등장했고, 윤창중, 문창극과 같은 돌출적 극우 인사가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박근혜는 국민들의 요구를 읽는 기민한 정세 판단 능력도 가지고 있다. 박근혜는 이명박 정권 시절에 여당 내 야당 포지션을 점하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쟁이 만들어 낸 피로감에 대한 대안으로 안정적 보수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대선 때는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를 자신의 담론으로 포용하기도 했다.
정세적 기민함은 집권 1년차에도 발휘되었다.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대선 여론에 영향을 미쳤음이 드러나며 정권의 정당성에 흠집이 생겼다. 코너에 몰린 국정원의 선택은 노무현 대통령의 NLL 발언록을 공개하는 것이었다. NLL 논란은 북한의 전쟁위협, 3대 세습, 장성택 숙청 사건과 연결되어 박근혜 1년차의 중심 이슈를 ‘안보’에 묶어두는 효과를 가져왔다. 나아가 국정원은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을 터트려서 안보 프레임을 국정 운영의 중심축이 되게 했다. 박근혜 정권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국정원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국가기구가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보수주의 공격의 선봉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안보와 종북이 다른 이슈들을 압도하는 정치 프레임이 되면서 비정당적 보수 세력의 활동도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극우세력들은 인권과 민주화라는 담론을 사용하여,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보편적 상징을 얻어갔다. 대북 삐라 날리기, 기획 탈북, 탈북인들의 증언과 강연 등을 활용한 북한 체제 무너뜨리기 시도가 북한의 인권, 자유, 민주화를 위한 활동으로 정당화되었다. 반면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한편으로는 종북 몰이에 허우적댔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문제에 대한 구시대적 입장을 탈피하는 데 실패했다.
최근에는 서북청년단과 같은 극우 행동집단의 활동이 부활하고 있다. 한 고등학생은 토크콘서트에 폭발물을 투척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테러를 우려하기 보다는 행사를 ‘종북 콘서트’로 몰아갔고, ‘종북 재미교포’를 추방하고 ‘종북 활동가’를 구속시키는 수순을 밟았다. 이렇게 극우 행동주의가 정당화되는 것은 분명 위험의 징표다.
“[극우] 단체들이 나라를 위한 역할 일부를 담당한다. 지금 한국에는 우파 단체는 있지만 극우 단체는 없다. 내가 말하는 극우 단체는 법이나 국가권력으로 안 되는 일을 나라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단체다.” 이창우 서북청년단 상임부총재의 말이다. 각종 재향군인 단체나 어버이연합과 같은 보수행동주의는 이전부터 있었다. 서북청년단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놀라운 노골성이고, 이를 허용하는 한국 사회의 변화이다.
2014년 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선고하면서 종북 세력을 제거한다는 2008년 기획의 1차 목표는 달성되었다. 북한 문제와 종북 논란을 중심으로 한 안보 여론 조성이 7년 동안 지속되면서 이에 대한 지지가 관철되고 있다.
안보 보수의 득세는 계속될 것인가? 박근혜 정권이 사회경제적 측면의 성과 없이 한국 사회의 위기를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에, 집권 하반기로 갈수록 안보 보수 세력에 대한 실망은 가시화될 것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이 북한과 동북아 안보 이슈에 관한 대안 마련과 보편적 표상 획득에 계속 실패한다면 보수 세력이 주도하는 안보 정국은 쉽사리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 진보진영의 미래가 걸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