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5/02 창간호
박근혜로부터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박근혜의 당선은 많은 사람들에게 믿고싶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우리는 2년 동안 그 ‘정치적 멘붕’에서 벗어난 것일까?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민주·진보 진영의 다수 담론은 여전히 절망과 혐오의 감정 속에 머무르고 있다. 박근혜의 당선은 박정희 향수에 의한 것이고, 박근혜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장막 뒤 인물들의 꼭두각시이며, 한국사회는 이제 파시즘의 길에 접어든 것이라는 인식들이다.
이런 주장은 박근혜 현상의 일부를 포착하는 것이지만, 박근혜의 개인적 속성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치우쳐 있어 여기서 어떤 대안적 사고와 실천이 생성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박근혜를 불러낸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과 그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불통’ ‘독재’ ‘수첩공주’ ‘닭근혜’와 같은 조롱을 반복하는 것은 무력하다.
위기에 빠진 신자유주의의 ‘안정적인 관리자’
박근혜가 당선된 배경에는 민주화 이후 삶에 대한 환멸과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있다. 그러나 완전히 등치되지 않는 양자 사이의 간극에도 주목해야 한다. 민주정부 10년과 박근혜 사이에는 이명박이 놓여 있고, 그 시간 동안 우리가 박정희 시대와는 전혀 다른 세계적 경제위기와 저성장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는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민주화라는 이상의 추락, (이명박이 시도했던) 친기업적 경제성장과 같은 보수적 가치의 불가능성을 동시에 맞닥뜨렸다. 그리하여 경제적 불평등과 민생 문제가 선거 이슈로 떠올랐지만 그것이 누구에 대한 지지로 귀결될지는 불확실했다. 진보·보수의 대결 구도 자체가 의미를 잃고 있으며, ‘지지 정당 없음’이라 대답하는 다수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승리의 핵심 요인이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복지나 경제민주화 같은 ‘진보적’ 의제를 수용한 것은 이런 상황에 기인한다. 민주당은 이것이 진정성이 없는 수사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박근혜보다 자기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집권기에 그들이 보여주었던 무능 때문에 설득력이 없었다.
여야가 경제민주화·복지정책의 차별성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박근혜의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뚝심 있는 정책추진’에 대한 기대는 큰 힘을 가졌다. 이 이미지는 아버지에게 많은 부분 빚지고 있지만, 그동안 가볍지 않은 정치 행보를 통해 스스로 만들어온 것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는 대중의 열망을 강력하게 동원하는 ‘파시즘의 수장’보다는 위기의 ‘안정적인 관리자’에 더 가깝다. 대중들이 꼽는 박근혜의 가장 큰 강점이 ‘신뢰·원칙’와 ‘안정감’이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빠졌지만 선택 가능한 새로운 정치 질서가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한 2010년대의 한국에서 박근혜는 위기의 한국사회를 ‘그나마’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대통령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의 침묵, 신자유주의의 침묵
침묵과 거리두기는 박근혜 어법의 핵심이다. 소통 부족은 박근혜가 많이 받는 비판이지만 지지층에게는 그것이 원칙, 소신, 신중함으로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 그녀의 침묵은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말실수로 인해 반대 세력에 빌미를 주었던 것과 대조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취임 후 2년 동안 박근혜가 보여준 상대적 안정감은 ‘정치를 잘 해서’라기보다는 ‘별다른 걸 하지 않아서’ 가능했다.
뉴스는 하루도 빠짐없이 대통령의 동정을 보도한다. 대통령의 연설, 일상, 패션, 휴가, 해외 순방 중 외국어 실력과 센스 있는 농담까지.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정치적 갈등의 순간에 우리는 박근혜를 찾을 수 없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왜 세월호 유족들과 만나지 않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법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대통령이 거기에 끼어들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더 일을 복잡하게 하고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박근혜는 문제를 외면하고 그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지지층을 지켜냈다.
박근혜의 국정운영은 지금 시기 신자유주의 국가가 지닌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은 사회의 권력을 관료 집단(각종 부처 및 전문가)과 재벌에게로 이양시켰다. 입장과 입장이 충돌하는 ‘정치’가 아니라 관료 체계에 따른 집행이 사회를 움직이며, 대통령은 모든 일에 개입하기보다 외교, 안보 등 상징적 업무에 집중한다. 대통령이 남겨둔 공간에서 정치는 국회(정쟁만 일삼는 여야)와 사법부(심지어 헌법재판소)가, 의제 설정과 유통은 미디어(종편과 길들여진 공영방송)가, 종북세력에 대한 물리적 위협은 우익단체(일베, 어버이연합, 탈북자단체 등)가 담당한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정책이 처음 도입될 때는 그것이 대단한 이념적 대안이나 급진적인 개혁인 양 떠들 수 있었지만(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은 개혁적 성격의 정부에 의해 도입되었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무엇인지가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치적 쟁점들이 불거지지 않도록 하고 대신 ‘경제’를 호출하여 위기관리에 힘쓰는 것이야말로 박근혜의 통치전략이자 지금의 신자유주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유일한 무기, 안보와 안전
박근혜의 통치 전략 중 가장 효과를 본 것은 ‘안보’ 강조이다.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와 진보적 대안이 무기력해진 시대에 좌절한 대중들은 분노를 표출할 적을 찾아다닌다. 미국과 유럽에서 나타나는 이민자,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경우엔 보다 가시적이고 강력한 적, 북한이 존재한다.
반북 감정과 종북 마녀사냥은 박근혜 정부 들어 더욱 기세를 부리고 있다. 보수는 통일이라는 이슈를 선점(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 기획,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했으며, 종편 방송은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과 후진적인 북한 사회의 이미지를 집집마다 배달하며 분단국가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무엇보다 종북 몰이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서 정점을 찍었다. 박근혜에게 반북·반공이데올로기의 강조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민주·진보 세력 전반의 정당성을 함께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인 카드이다.
‘안전’ 역시 박근혜가 대선 때부터 강조해온 문제였다. 하지만 박근혜에게 안전은 ‘4대악(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을 박멸하는 것일 뿐이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구조적 사건으로 보지 못하고 오직 ‘범죄’와 ‘비리’의 문제로 보았던 것은 천박한 안전 이데올로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안전과 안보라는 이슈는 ‘안정감 있는 국정운영’이라는 박근혜의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손쉬운 ‘적’인 북한(과 그 동조세력), 눈에 보이는 ‘악’인 범죄·비리를 엄중히 다루며 국가가 숨기려 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력함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박근혜가 아니다?
1월 둘째 주, 박근혜 정부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인 35퍼센트를 찍었다. 전통적 지지층인 50~60대와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이탈이 확연하다. 정윤회 비선 논란에서 시작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 메모까지, 수면 위로 드러난 권력암투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부르고 있다. 아무 문제 아니니 기존에 하던 것을 열심히 하겠다는 박근혜의 ‘한결같은’ 대응은 효과가 있기는커녕 국민들의 신뢰를 추락시켰다.
외부적 압력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정부가 여권 내부의 분란으로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현 정세의 가장 큰 역설은 박근혜의 지지층이 이탈하더라도 수렴될 다른 곳이 없다는 것이다. 대안 세력의 부재는 박근혜 정부를 떠받치는 최고의 디딤돌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래 가장 너른 대중운동이 벌어졌던 시점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인 2014년 5~8월이다. 당시 집회에는 ‘박근혜가 책임져라!’는 구호와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가 공존했다. 그러나 이 두 구호에는 각각의 곤란이 있었다. 전자는 박근혜가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지려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히 드러났기 때문에 무력했으며, 후자는 분노의 표현일 수 있으나 그 불가능성이나 대안이 없어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시민들의 너른 공감을 사지 못했다.
박근혜가 책임질 수도 없고, 박근혜만 퇴진한다고 되지도 않을 문제라면, 결국 ‘문제는 박근혜가 아닐’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약점을 건드리는 정치폭로는 전술적으로 할 수 있고 해야 하지만, 거기에만 매달려서는 3년 후의 민주·진보 세력에게 별 희망이 없을 것이다. 박근혜를 넘어서기 위해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신자유주의 이후의 정치’를 위한 내용, 세력, 실천을 만드는 것이 우리 운동의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