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조 할 권리
  • 2015/02 창간호

노조와 세상 사이 담을 허무는 실험, 희망연대노동조합

희망연대노조 김진억 나눔연대국장 인터뷰

  • 인터뷰ㆍ정리 김유미 사회진보연대 정책선전위원
  • 김진억 희망연대노동조합 나눔연대국장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내에 희망연대노조라는, 이름도 독특한 조직이 만들어진 것은 2009년 12월이었다. 이 노동조합은 케이블비정규직, 다산콜센터 등을 조직하고 투쟁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선배 지부들이 나서 다른 노동자들을 조직하며 이어지는 끊임없는 확장, 사회적 이슈를 만들며 전략적으로 싸워 쟁취한 승리, 취약계층 아동청소년을 만나는 지역활동 등 희망연대노조의 행보를 보면 여러 모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조직이 아닐 수 없다. 

김진억 국장님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작년 말 씨앤앰 투쟁이 승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지부 투쟁이 한창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투쟁의 현장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사진 출처 : 희망연대노동조합 Daum 카페)


노동조합 활동과 고민

저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시절에 서노협(서울노동조합협의회) 중동부지구 사무차장을 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동부지역 노동자회라고 노동자 회원 단체에 있었고요. 그게 자연스럽게 민주노총 준비위 시절에 중동부지구협의회로 이어졌고, 96년인가 97년부턴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부장으로 있었어요. 그때부터 서울본부에서 쭉 활동을 했고 2001년 12월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으로 가서 활동을 하다가, 2005년에 다시 민주노총 서울본부로 왔어요. 그 다음부터는 2009년도까지 계속 서울본부에서 활동을 했어요. 조직국에서 주로 일을 했으니까 투쟁 사업장에 대한 지원이나 미조직 비정규 투쟁 사업을 주로 해 왔죠. 사회공공성 투쟁 같은 것도 했고요. 

그런데 당시 비정규노동자가 우리 운동의 새로운 주체라고 이야기가 되었잖아요. 제가 많은 미조직비정규 사업장을 조직하고 투쟁을 해 보면 결국에는 기존 운동에 편입이 되더라고요. 비정규직 투쟁은 격렬할 수밖에 없거든요. 싸움의 격렬성은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주체 형성이냐 하면 자기 전망, 내용, 이런 것들이 없는 것 같았어요. 비정규직 노조도 실리주의에 흡수되고 자기 작업장의 임단협 투쟁에 갇히는 것 같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작업장을 넘어서 재생산 공간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활동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희망연대노조라는 실험의 시작

그 문제의식을 반영한 활동을 어떻게 할 건가 하다가 기본 방향을 지역사회운동노조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동과 사회운동, 노동과 지역이 만나서 새로운 방식의 노동조합 운동을 해야 한다고 방향을 잡은 거죠. 

2007년 사회운동포럼, 2008년 노동운동포럼을 진행하면서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모색을 했죠. 근데 당시 제가 생각하는 지역사회운동노조의 구체적인 상이 없어서 논의 자체가 붕 뜨는 느낌이 들었어요. 공감하는 사람들도 이야기만 무성할 뿐 더 이상 진전이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기존 노동조합을 그런 성격과 내용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고민을 했는데, 기존 노동조합의 관성이란 게 있잖아요. 그리고 기존 노동조합한테 하자고 하려니 구체적인 사례도 없어서 설득이 어렵고. 그런 모델이 있어야 설명을 하고 공감을 얻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나의 작은 사례, 실험 모델로 희망연대노조를 만들게 되었어요. 형식은 지역일반노조인데 노동조합의 지향과 성격을 사회운동노조로. 

몇몇 분들은 ‘형식이 지역일반노조인데 그걸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죠. 하지만 서울일반노조를 변화시키는 게 기존의 체계, 관성에서 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계속 논의는 했었어요. 서울지역 일반노조나 서경서비스노조나 사무금융노조, 그 문제의식에 포괄적으로 공감하는 활동가들과 토론은 계속 하고 있었죠. 그러다 결국 희망연대노조라는 하나의 사례를 만들면서 그 노조들과는 연대 교류를 하며 몇 년에 걸쳐서 통합하는 과정을 거쳐 보자, 공감대 형성, 내용, 실천을 만들면서 나중에 통합해보자고 얘기를 했었어요. 별도로 만드는 것에 대한 이견은 계속 있었죠. 설득이 다 되었다기보다는, 먼저 만들고 실험을 하는 식으로 실천을 했던 거죠. 그때의 논의는 이후엔 중단 되었어요.
 
 

첫 번째 조직화, 케이블 노동자

케이블 업체 노동자 조직화가 첫 번째 조직화였는데, 목적의식적이었다기 보단 상담이 들어왔어요. 씨앤앰이 내부 구조조정도 앞두고 있었고, 동종업종의 다른 업체보다 노동조건이 열악했어요. 당시 AS·설치가 일부 정규직으로 남아있었는데 그걸 구조조정을 하려는 거죠. 그래서 여러 사람이 여러 경로로 노조 상담을 했던 거예요. 한국노총도 찾아가고, 언론노조도 찾아가고, 민주노총 서울본부에도 찾아가고. 그게 2009년 하반기예요. 

초기에 저한테 상담왔던 곳은 씨앤앰 중부지사였어요. 그래서 “중부지사 한 개 만으로는 안 된다. 한 개 지사로는 사측의 탄압에 의해서 노조가 지켜지기 어렵다. 적어도 과반수의 지사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까지 조직사업을 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걸 타진해 봐라.”라고 했던 거죠. 한국노총은 잘 얘기가 안 됐고, 언론노조에선 언론노조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은 거고. 그래서 제가 하반기부터 접촉을 하면서 2차, 3차 상담을 했던 거죠. 

그런데 그 때가 희망연대노조를 준비하던 때였어요. 케이블 노동자들은 일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만나니까, 희망연대노조가 지향하던 지역사회운동, 노동과 지역이 만나는 구상을 담보해낼 수 있는 업종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걸 염두에 두고 논의를 같이 했어요. 

1월 25일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원래는 좀 더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사측이 알게 되면서 빠르게 하게 된 거죠. 그 때는 거의 과반수 정도였어요. 

당시 조직된 노동자들은 정규직이었어요. 1월 25일에 만들어지고 노동조합 불인정, 부당노동행위, 노조탄압에 맞서서 파업을 하고 11월 11일에 타결을 했어요. 당시 간부들은 사측과 치열한 투쟁을 하면서 조직이 강화됐고 의식이 깨이면서 주요 간부들은 협력사, 그러니까 외주업체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늠연대국장
 

정규직 노조가 안정화되자마자 비정규직 조직화에 돌입하다

투쟁하면서 여러 손실이 있으니까 연말에 노동조합이 하루주점을 했는데, 그 때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염두에 두면서 했어요. 일부를 노출 안 되게 조심하면서 초청해 만났죠. 

기본적으로 간부들은 ‘내 권리만큼 외주업체 노동자 권리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원래 같은 회사 소속이다가 2007년에 AS·설치기사들만 외주화를 했던 거거든요. 과거에 우리와 함께 했던 동료인데, 그 사람들은 외주화되고 노동조건이 후퇴한 거죠.

2011년에는 비정규직 노동조합 준비모임으로 ‘함께살자’ 모임을 만들었어요. 정규직 노조의 준비팀이 권역별로 만들어져서 조직사업을 쭉 들어간 거죠. 조직화 원칙은 마찬가지로 과반수. 그래야 조직을 유지 강화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비공개로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공개하는 순간 사측이 개입을 하고, 사측이 막는 속도가 더 빠르니까. 
 

씨앤앰에 이어 티브로드까지, 케이블비정규직 조직화 바람

케이블비정규직(씨앤앰)지부는 2013년 2월 13일에 출범했어요.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같은 업종의 티브로드 노동자들이 연락을 해 온 거예요. 시간이 없어서 출범식 하는 날 그리로 오라고 했어요. 출범식 전에 와서 만나고, 출범식 한번 참관해 볼래, 해서 참관을 하고 나서 티브로드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조직을 바로 들어갔어요. 
 
케이블비정규직 씨앤앰지부는 2년 동안 준비한 거잖아요. 그래서 티브로드도 충분히 준비해야 된다고 그랬는데, 거기가 내부 구조개편을 앞두고 있어서 급하다, 준비 기간은 짧지만 내부 상황상 급격하게 조직화를 올릴 수 있다, 주체들이 그걸 절박하게 원해서 불과 한 달여 만에 조직이 됐어요. 
 

비슷한 업종으로의 확산

SK브로드밴드랑 LG유플러스 조직화는 씨앤앰이나 티브로드 간부·조합원들이 역할을 했죠. 비슷한 업종이라 친구도, 같이 일했던 사람도 있어서 알음알음 연결을 해 준 거죠. 2013년 7월부터 상담이 오거나, 연결을 시켜주기 시작해서 1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비공개 조직 사업에 돌입을 했죠. 

LG유플러스는 원래 서울일반노조에도 조직 상담이 들어와서 준비하고 있었던 게 있어요. 희망연대노조도 따로 하고 있었고. 서로 모르고 진행하다가 도중에 알게 되었는데, 서울일반노조와 논의를 통해 조정을 해서 서울일반노조가 만나던 단위를 희망연대노조로 이관을 한 거죠. 쉽진 않았을 텐데 서로 오랜 신뢰관계가 있었고, 희망연대노조로 옮기면 그래도 책임성 있게 할 거다 하는 서울일반노조의 판단으로 양해와 조정을 한 거죠.
 
 

노동조합 건설보다 더 중요한 조직의 유지·강화

씨앤앰, 티브로드, SK, LG도 그렇고 그 전에 시도는 무수히 있었어요. 다른 점은, (이전에는) 한 개 센터, 소수 센터가 했던 거죠. 한 개 센터로 하면 그 안에서 집중적인 탄압을 하든가 그 센터 자체를 날려버리면 되잖아요. 그래서 흐지부지되거나 무력화되거나, 노조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하고 회유, 탄압해서 취소되는 사례가 무수히 많았던 거예요. 그래서 전국적 다수조직화를 해야 한다고 봤던 거죠.

제가 미조직 비정규직 사업을 수없이 해왔잖아요. 저는 노조 만드는 것 보다 유지 강화하는 게 더 어렵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설프게 노동조합 만들기보다는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 얘기를 일본 노동조합과 했더니, 렝고(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 기업별노조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과 투쟁에 소극적임)가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투쟁을 회피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대요. “준비가 더 필요하다.” 근데 표현은 똑같을 수 있는데, 제가 얘기하는 건 제대로 준비해서, 말하자면 패배하지 않고, 조직을 희망으로 제대로 남길 수 있는 철저한 과정과 준비를 하자. 그런 건데 표현은 비슷하죠. (웃음)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는 먼저 만들어진 선배 지부의 간부들이 역할을 많이 했죠. 안 그러면 감당이 안 되잖아요. 말하자면 월차 내고, 선배 지부가 아침 선전전 퇴근 선전전을 한 거죠. 교육 같은 경우도 본조가 감당이 다 안 되니까 조직 사업을 같이 해 왔던 전현직 간부들이 교육 다니고. 왜 우리 지부 사업하기도 힘든데 다른 사업장에 신경 쓰냐, 간부 성향에 따라 불만이 있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다수 간부들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투쟁의 과정에서 경험으로, 그리고 끊임없는 교육 토론으로 그래야 한다는 인식을 유지했고. 그게 하나의 풍토로 된 것 같아요.
 

2014년, 씨앤앰 투쟁

처음엔 임단협 투쟁으로 준비를 했었어요. 그런데 쟁의조정 들어가면서 사측의 태도, 입장, 여러 상황 종합해보니 아 이거는 임단협 투쟁이 아니더라고요.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다. 사측이 전면적인 도발에 나섰다. 업체 교체 과정에서 장기파업 유도하고, 생계상 문제로 노동조합이 약화되고 나면 전면 구조조정, 이런 수순으로 들어오겠다고 예상을 했죠.
 
그러면 우리도 장기적인 싸움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서, 사측의 기도를 무력화하자는 얘기를 간부들과 하면서, 경고파업과 현장복귀를 했던 거죠. 그리고 투기자본의 매각 앞둔 구조조정 시도에 대해 사회적으로 폭로했어요. 현장 복귀해서 끊임없이 여론 조성을 하고, 그러면서 필요한 시기에 재파업으로 나오는 걸로 기본적으로 생각을 했던 거죠. 해고 대오가 발생했으니 해고 대오는 노숙농성과 같은 물리적 투쟁을 하고. 

근데 케이블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속한 외주업체가 직장폐쇄를 했어요. 그래서 씨앤앰지부는 복귀하고, 비정규직 지부는 이왕 직장폐쇄 했으니 한 번 붙어보자, 했던 게 7월 중순 정도인데 사측이 버틴 거죠. 그래서 8월 말, 추석을 앞두고 케이블비정규직 대오도 현장복귀를 했고, 해고 대오가 남아 투쟁을 했어요. 애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걸린다, 10월 국정감사 투쟁, 그 다음엔 뭐, 이런 단계들을 설정해서 결정적인 시기로 잡은 거는 크리스마스, 연말이었어요. 총공세투쟁을 통해 연말 내에 승부 본다고 한 거죠. 

11월 15일 고공농성 투쟁 들어가고. 현장복귀 했던 씨앤앰 정규직이 18일 전면파업, 케이블비정규직지부는 장기파업을 이전에 해서 조직정비가 필요해서 순환파업으로 고공농성을 지키고. 이러면서 그동안 누적되어 온 사회정치적 압박이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종교, 정치권까지 각각의 분야에서 압박, 그러면서 타결을 하게 된 거죠. 
 

‘나눔연대활동’이라는 특별한 전략

제가 가장 고민한 것 중 하나가 조합원의 삶이에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투쟁을 통해서 임금을 인상 받고 고용안정이 되면 어떻게 살아가느냐, 결국 자본에 종속된 삶을 살더라고요. 아이들 사교육 시키고 좋은 옷 입히고, 좀 여력이 되면 재테크 하고, 주식투자나 부동산을 하고 사보험 들어서 노후를 대비하고. 현대자동차도 그렇고 현대중공업도 그렇고 골리앗 투쟁도 하고, 정말 대단한 투쟁이었잖아요. 투쟁할 때 머리띠 묶고 반짝반짝 빛나던 눈이,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자기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한 건 좀 대안적 삶이 필요하지 않나. 물론 어려운 일이죠. 구조 자체도 그렇고, 개인도 30~40년 동안 그런 삶을 살아 왔는데 바뀌기도 어렵고. 쉽게 표현하면 ‘더불어 사는 삶’, ‘아래로 향한 운동’, 이걸 해야 하는데 우리 지역에서 나눔과 연대를 하는 것을 생각했어요. 지역 사회에 녹아들어서 함께 하고, 항상 다른 사람의 권리까지 생각할 수 있도록.

고민하다 처음에 하게 되었던 게 취약 계층 아동청소년 사업이에요. 우리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지역사회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같이 해보겠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예를 들어서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건 아이들과 학부모에 대한 노동인권 교육이다. 어떤 단체는 생태환경, 어떤 단체는 희망의 집수리를 통해서 아이들이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만들고, 정신적 상처가 있는 아이들 심리 상담도 하고. 이런 지역 연대, 나눔을 계속 하기 위해 희망연대노조는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했어요. 


삶의 변화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전략으로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활동이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일단은 조합원의 삶의 변화. 작지만, 더불어 나누는 삶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거고요.

두 번째는 사회연대 투쟁 전략. 우리가 함께 하면 지역사회가 언젠가 우리가 투쟁할 때 함께 할 거다. 항상 듣는 얘기는 인권단체나 이런 데에서, 어려울 때만 노동조합이 연대 해달라고 손 벌린다. (웃음) 저는 사용자가 작정하고 달려들면 노동조합 독자적인 힘만으로는 승리할 노동조합이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승리하려면 현장의 힘뿐만 아니라 사회적 힘이 있어야 되는데, 사회적 힘조차 노동조합이 자기 활동으로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한 거죠. 

마지막으로는 이걸 조직화전략으로 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영세소규모 노동자 조직화, 동네노동자 조직화를 생각하고 있는데 제일 어려워요, 이게. 사업장 단위로 조직할 수 없는 거고 지역 단위로 조직하거나 아니면 지역 사회의 연대가 있어야 가능한 건데, 이렇게 끊임없이 지역과 신뢰와 관계를 만들어서 나중에는 동네 노동자 조직 사업을 위한 신뢰, 환경이 조성될 거다 이런 생각을 해요. 이를테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노동 인권 교육을 했는데 이 아이들이 성장하면 청년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거 아니냐. 5년 10년 뒤에는. 이런 조직화 전략의 일환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합원의 자발성을 끌어내는 비법

노동조합 활동의 주인공은 조합원인데,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 노동자, 노조 활동을 만들 거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끊임없이 교육 토론, 특히 토론을 중시해서 하려고 해요. 

또 간부 순환이 있어요. 저희는 본조나 지부는 간부를 2년 이상 못해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새로운 간부 육성, 그리고 희망연대노조가 지역연대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 활동을 전임들이 담당하도록 해요. 현직이 앞장서고 전직이 뒷받침하는 튼튼한 간부층, 그래서 결국엔 전 조합원의 간부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도 조합원 주체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거예요.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각종 소모임. 근데 그게 또 나눔연대활동과도 연결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저희 야구부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취미생활이잖아요. 그런데 할 수 있으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쳐주고. 목공교실을 한다면 그걸로 아이 책상도 만들어주고. 자기의 삶의 즐거움과, 그걸 또 나누는. 그런 무수한 활동들을 하는 거죠. 일상 활동이 튼튼해야 노동조합이 살아 움직이고 힘 있는 조직이 되더라고요. 
 

희망연대노조 어디만큼 와 있나

희망연대노조가 지금 만 5년을 경과해서 6년째에요. 5년 1개월 째. 처음 시작할 때 지역사회운동노조가 만만치 않고, 정착화 되려면 10년은 걸린다고 생각을 했어요. 6년차니까 절반을 넘어섰는데, 아직까지는 물음표, 미지수다. 여기까진 왔는데 여기서 정체되거나 후퇴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지금부터가 중요하죠.

특히 작년에 우리가 워낙 투쟁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서 우리가 강조했던 일상 활동, 생활 문화 부분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건 사실이에요. 중단하지 않고는 해 왔는데, 항상 이렇게 전면적 투쟁에 돌입했을 때 어렵더라고요. 사업 역량들을 많이 확보해야 될 것 같아요. 
결국 사람이 문제인 것 같아요. 지역사회운동노조의 의미를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주체 형성이 핵심이 아닐까요. 교육과 토론은 한계가 있어요. 교육은 몇 개월 안 가요. 그게 어떻게 작게라도 자기 실천으로 하느냐가 교육과 토론한 마음과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인 거죠. 
 

기존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반응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눈여겨볼만 하다. 의미 있네. 잘 됐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경계하거나 걸림돌로 보는 측면도 있어요. ‘기존 산별 체계나 지역본부 체계와 맞지 않다.’ 지역본부 소속인데, 사실상 전국 조직이잖아요. 산별 체계로 재편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죠.

그런데 의외로 의미를 두고 관심 있게 지켜보거나 좋은 사례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꽤 많이 계세요. 경계와 비판하는 부분들도 저는 이해를 해요. 그런데 제가 중요하게 보는 건 조직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우리 노동조합 운동의 지향과 내용인 것 같아요. 저희는 작은 조직이니까, ‘이런 노조도 있구나. 저렇게 하는 것이 검토해볼만 하지 않을까.’ 이 정도만 우리 운동에 메시지가 된다면 좋겠어요. 
 

노동조합 활동가들에 하고픈 말

의외로 많은 활동가들이 기존 경험, 방식의 관성에 빠져 있어요. ‘이렇게 해왔지 않냐’ 이러면서 새로운 모색이 많이 제한되고 차단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역동적이지 못하고. 정파 문제도 있고요. 정파로 줄 세우고, 세 확장에만 욕심내고.

저는 노동조합의 활동, 민주노총의 의미는 당연히 인정하지만, 새로운 모색, 예를 들어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꼭 노동조합이어야 돼? 노동자운동이?”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고. 중심은 잡되 다양한 사고와 상상력, 그런 실천을 했으면 좋겠고요.

조직도 저는 조직화 자체보다는 어떤 조직화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만드는 거만이 아니라 유지·강화하고, 새로운 주체 형성. 새로운 주체형성이란 건 조합원이 됐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고 그 주체가 어떤 지향으로 생각과 실천을 하느냐가 문제예요. 

투쟁도 마찬가지인데, 투쟁은 정당한 거지만, 그게 유일한 지향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가능하면 이기는 투쟁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이기고 싶지 않은 노동자가 어디 있겠냐마는. 최선을 다해, 투쟁 자체보단 투쟁으로 인해 좋은 의미가 이어질 수 있는. 그만큼 더 철저하게 해야 된다는 얘기죠. 철저한 준비, 이기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노력들,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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