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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 창간준비3호

비틀거리며 투쟁의 길로 가다

박기홍 성서공단노조 사무국장 인터뷰

  • 인터뷰·정리 구준모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 만난사람 박기홍 성서공단노동조합 사무국장
안녕하세요. 어제(12월 10일) 발생한 염소누출 사고부터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점심시간에 가스가 누출되고 2시 반경에 현장에 가셨죠. 어떤 상황이었나요?
 
성서공단에서 가장 오래된 1단지 내에 있는 도금공장에서 발생한 사고였어요. 황산과 차염산이라고 하는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곳인데, 차염산을 실고 온 탱크로리기사가 황산 탱크에 차염산을 넣어서 사고가 발생했어요. 두 물질이 반응하면서 유독 가스가 누출된거죠.
 
그런데 거기가 바로 성서공단노조가 빼놓지 않고 가는 선전전과 문화제 형식의 거리공연 장소였어요. 위험한 유해물질을 다루는 영세한 공장들이 많이 있는 곳이죠. 예견되었다고 하면 슬픈데, 성서공단노조가 유해물질 사고의 가능성을 높게 봤던 곳이에요. 사고가 난 업체 공장 안에 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에 들어가서 선전전을 많이 했죠.
 
50명이 병원에 실려 갔어요. 야외에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위독한 분은 없지만 경과는 살펴봐야 할 거 같아요. 50미터 거리에 있었던 노동자들도 냄새를 맡았다고 하니 병원으로 실려 간 50명 외에도 주변 공장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가스에 노출된 거죠. 그런데 오늘 공장은 다시 돌아가고 있다고 해요. 성서공단노조는 산업보건연구회와 대응을 준비하는 중이에요.
 
성서공단에는 이렇게 규모가 영세하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사업장이 많은 거 같은데, 성서공단은 어떤 곳인가요?
 
대구에는 원청이 없어요. 울산이나 창원에 가야 원청 사업장이 있죠. 울산의 1차 하청업체가 경주에 밀집되어 있다면, 성서공단에는 그 이하의 하청업체들이 있어요. 또 대구의 염색공단에서 넘어온 영세한 업체들도 있고요. 창원 기계공단의 하청업체, 구미 전자공단의 하청업체들도 들어와 있어요. 
 
결국 성서공단은 영세한 하청업체들이 모여 있는 공단이라고 보면 되요. 그러다 보니 노동강도가 매우 세고 임금이 열악하죠.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도 있는데 임금은 조금 높지만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고 보면 되요.
 

성서공단에는 5만 6000명의 노동자들이 있어요. 이들이 성서공단노조의 가입 대상이죠. 노동자들은 40~50대 남성노동자들이 많아요. 젊은 사람은 드문 편이에요. 공고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대구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겠죠. 수도권으로 가거나, 아니면 대기업이 있는 울산이나 창원으로 가려고 해요. 그리고 이주노동자들도 많아요. 약 5000명으로 공단 노동자의 10퍼센트 정도 된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완강하게 싸우면서 노조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성서공단노조가 2002년에 만들어져서 이제 12년이 넘었죠. 성서공단노조는 이주노조 조직화의 모범 사례로 유명합니다. 지금도 이주노동자 비중이 높은가요?
 
성서공단노조 조합원 중에 약 60퍼센트가 이주노동자에요. 2002년 성서공단노조가 출범한 후에 대구에서 이주노동자 사망 사고가 많이 발생했어요. 2004년에 김헌주 선배가 이주사업부장이었는데, 강제단속이 들어와 수갑까지 찬 이주노동자를 우리가 물리력으로 싸워서 빼내온 일이 있었어요. 그 동지를 사무실에서 하룻밤을 재운 후에 출입국 측과 협상해서 수갑 열쇠를 받고 결국 단속을 피했죠. 그 일로 김헌주 선배는 구속이 되었지만, 성서공단노조가 이주노동자들을 위해서 완강하게 싸우면서 노조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당시에 이주노동자들의 가입이 줄을 이었죠.

성서공단노조는 이주노동자들을 포괄하지 못하면 노동조합으로서 공단의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없다고 보았어요. 아래로 아래로 가서 조직하고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겁니다. 
 
이주노동자 사업이 여전히 성서공단노조 사업의 주요 축이겠네요?
 
그렇죠. 현재 성서공단노조 상근활동가가 위원장을 포함해서 4명이에요. 조합원 규모에 비해서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게 아니에요. 10년 전에는 7명이었죠. 6만 가입 대상을 놓고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늘 바빠요. 성서공단노조의 사업체계는 이주사업부와 영세사업장사업부, 상담소로 이루어져 있어요. 기존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단협이 기본 활동이라면, 성서공단노조는 조합원은 많지 않지만 핵심 사업이 조직되지 않은 공단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라는 것이 특징이에요.
 
이주노동자 사업에서 상당한 성과를 낳았지만, 12년의 활동이 대규모 조직화 성과로 드러난 것은 아닌데요. 이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어떻게 평가를 하시나요?
 
2002년 이전에는 성서공단에도 금속노조의 전신인 금속연맹 사업장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투쟁하는 과정에서 업체가 폐업하고 노조가 판판이 깨지는 거에요. 당시 성서공단에는 노조를 설립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소문이 퍼졌죠.

이런 이미지를 깨고 기업별 노조가 아닌 지역노조를 하자는 시도로 성서공단노조가 만들어졌고, 이 시도가 12년이 되었어요. 성과가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그렇게 물어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여전히 실험의 과정에 있어요. 시니컬하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이야기하거나 의지주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태도는 옳지 않다고 봐요.
 
조직화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기존 노조와 활동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나요?
 
올해 제가 담당한 일은 임금요구안 조사, 한 달 동안 이어진 최임 천막농성, 점심 거리공연 등이 있었어요. 최저임금투쟁을 위해 올해도 많이 노력했어요. 2009년에 천막농성을 처음했고 이제 6년차에요. 

올해 성과라고 하면 지난 5년의 발버둥 몸부림이 전국화되었다는 데에 있어요. 3년 전부터 성성공단노조는 임금요구안 조사를 했는데 이게 올해는 전국 네 군대 공단에서 진행됐죠. 임금 요구가 2012년에 6900원, 작년에 6500원, 올해는 6700원이었요, 자평일 수 있으나 성서공단의 노력이 전국화되었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봐요. 또 대구지역에서 성서공단노조와 성서공대위가 최저임금과 생활임금 이슈를 확산시켰죠.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료소 사업, 한글교실 사업도 계속하고 있고, 상담소에서는 상담에 따른 노동위 진정 등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죠. 
 
“노동조합이 사업장에 갇히지 않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성서공단노조는 청도 송전탑 투쟁에 열심히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조로서 지역의 사회운동에 나서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나요?
 
사회운동노조라는 것이 이론도 있고 정책도 있겠으나, 제 식으로 이해하면 노동조합이 사업장으로 갇히면 안 된다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성서공단노조는 지역노조를 표방하기 때문에 사업장과 공단을 넘어서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어요. 2008년도에 대구에 앞산 터널을 만드는 문제로 성서공단노조가 적극적으로 연대했어요. 저는 그때 땅과자유라는 모임의 구성원으로 투쟁을 같이 했는데 성서공단노조의 연대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이렇게 다양한 지역의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사회운동노조겠죠. 밀양 송전탑이 많이 알려졌는데 청도 송전탑도 같은 싸움이에요. 청도 삼평리는 경북이긴 하나 성서공단에서 차량으로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에요.  

2012년 연말부터 농성장 지지 방문이나 농성장 철거 막기 위한 활동을 쭉 해왔어요. 도시락도 싸가지고 가고 표시는 많이 안 나더라도 꾸준한 지지 연대를 해왔죠.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것도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구의 노동운동은 송전탑 싸움에 연대하면서 지역운동이 성장한 거 같아요. 청도 삼평리에는 민주노총 대구본부를 포함해서 지역 노동 사회단체가 모두 결합했거든요.  

7~8월에 수요문화제에서 송전탑 문제에 대한 영상도 틀고 하면서 노동조합이지만 노동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문제도 지역에 알리려고 노력했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독특한 경로로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어요. 녹색평론 대구독자 모임에서 시작한 땅과자유에 애정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대구시민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그게 첫 활동이었나요?
 
땅과자유 활동을 먼저 했어요. 저는 밀양 출신이에요. 고등학생 때부터 이런 저런 책을 보면서 사고도 치고 그렇게 성장했어요. 원래 미대를 가려고 그림을 그렸는데,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선배들 따라 술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미술실 들어가면 나는 유화 물감 냄새의 독특한 향기가 있는데 그 향을 맡으면 매우 편안해 졌죠. 고향이나 영혼의 안식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밀양에서 미술 특기생으로 고등학교를 갔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만족했는데 헛바람이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미술학원 선생님이 386세대 고등학교 선배였는데 운동권 책과 민중가요 LP판이 학원에 많았죠. 열심히 읽고 들었죠. 

결국 미대에 못 갔어요. 헛바람이 들어서 어떻게든 수도권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다 떨어졌죠. 집안 사정이 나빠서 당시에 재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요. 자괴감에 빠져서 힘든 시기를 2년 정도 보내고 군대에 갔어요. 

군대에 가서도 휴가 나오면 밀양에서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운동에 대한 동경은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2003년 말년 휴가 나왔을 때 이계삼 선배가 지율 스님 2차 단식을 절절하게 이야기하면서 한두 달이라도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제대 후에 부산에 가서 두 달 정도 그 일을 했죠.
 
지율스님 단식이 끝나고는 경기도 안산으로 갔어요. 군대에서 <말해요 찬드라>를 읽고 막연히 이주노동자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작정 안산이주민센터를 찾아가서 박천응 목사를 만났죠. 두 달 동안 안산에서 공장에 취업하려고 알아봤는데, 취업이 안 되었어요. 또 공장에 대한 개념이 없다가 큰 기계가 돌아가는 걸 보니까 겁도 났고요. 취업이 안 되니 타지에서 더 버티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때 이계삼 선배가 대구에 가서 땅과자유를 찾아가라고 했어요. 2004년 2월 즈음에 그래서 대구로 갔죠. 대구에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여기저기 신세를 지면서 버텼고, 2004년 이라크파병 시기에 문정현 신부님이 활동하던 평화유랑단에 참가했어요. 그리고 대구에서 활동을 하려고 보니까, 제안이 들어왔던 게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대구시민모임이었어요. 거기서 2년 조금 안 되게 활동을 했고, 그 이후에 1년 여 정도를 땅과자유를 기반으로 여기저기 필요할 때 단체 일을 조금씩 하고 그런 식으로 지냈어요.  
 
공무원노조에서 활동한 건 언제였죠?
 
공무원노조 대구경북본부에도 2008년에 들어갔다가 1년도 채 안 되어서 그만두고 나왔죠. 공무원노조를 나오고는 공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이 없으니까 공허한 느낌, 막연한 느낌, 책으로만 본 느낌으로 계속 사는 거 같아서 공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성서공단에 있는 작은 공장에 취업했죠. GM의 하청업체인 한국델파이의 하청업체였어요. 아마 5차 하청 정도 되려나? (웃음) 5명이 일했어요. 그렇게 2년 현장 일을 하다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배들이 빠지면서 상근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운동에 과학과 체계가 필요하지만 한편의 시를 읽고 감동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문학적인 표현을 많이 쓰고 페이스북에 시도 많이 올리는데 문학에 취미가 있는 거 같아요?
 
운동권 취미 생활이 뭐 특별한 게 있나요? (웃음) 시나 소설은 예전에 조금 봤는데, 요즘에는 많이 보진 않아요. 어렸을 때 밀양이라는 작은 동네에 살면서 해방구가 책이었어요. 그래서 시나 소설을 좀 본거죠.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건 박영희 시인의 작품이에요. 문학이 어떤 이론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충격을 받았어요. 《해 뜨는 검은 땅》이라는 시집인데. 

운동에 과학과 체계가 필요하지만, 한편의 시를 읽고 감동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활동가에게는 이론과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또 문학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죠. 김선우 시인이 최근에 <꼰대 진단법>이라는 칼럼에서 다른 사람의 구체적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을 비꼬기도 했잖아요.
 
마지막으로 성서공단노조의 중장기적인 전망이나 개인적 계획은 무언가요?
 
성서공단노조는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에 발맞춰나가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해야겠죠. 노동운동 전체의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것은 현장에서 올라오는 요구를 가지고 만들어야 해요. 2015년 또한 공단 전략조직화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고민이에요. 또 강제단속 강제추방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이주노동자 운동이 이제 어떤 이슈를 가지고 해나갈 것인지도 숙제죠. 공단노조 운동이든 이주노조 운동이든 성서공단노조가 해왔던 역할을 어떻게 할지가 영원한 숙제에요. 매번 고민은 하는데 쌓여있는 숙제가 쉽게 풀리지는 않네요.

개인적으로는 2015년이면 서른여섯 살인데, 이 나이에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할까요? (웃음) 잘 모르겠네요. 저는 되게 많이 흔들리면서 살아왔어요. 좀 더 안정을 찾으면서 동지들과 함께 운동을 해나갔으면 좋겠네요.
 

해 뜨는 검은 땅

박영희
 
녹슨 삽에 묻어 있던 흙같이
부스러기 세월을 뒤로 하고
이곳에 첫발을 딛은 지도 다섯 해가
지나고 있소 유형,
빠져버린 머리카락에 미련 두는 놈 없고
설거지 끝난 물 버리며
아깝다고 혀 차는 년 없는
부유해져버린 이 땅에 발 딛고 살면서
유형을 만났고
하청업은 하청업대로
직영에 수량 채우기 위해
검탄부에게 싼값으로 탄을 사 팔아야 하는
이런저런 부조리와 설움 속에서
유형과의 만남도 한 해가 지고 있소
유형,
감옥에서 나온 지 며칠 만에
느닷없는 청년들의 몽둥이 기습을 받아
처참하게 깨진 유리조각들과 함께
노동상담소 현판을 내려야 할 때
찾아오는 발길 끊기고
떠나는 사람들만 한숨으로 이삿짐을 꾸리는
새벽녘 사북 바람은
더럽게도 춥고 서러웠소
시커먼 이 바닥에 희망이 남아 있는 한
떠날 수 없다고 새벽소주를 삼켰지만
그땐 정말,
일년 내내 말린 씨앗이 되어
나를 갱속에라도 묻어버리고 싶었소
내가 지닌 사랑마저
구경꾼으로 변해가던 그날 새벽은
이기주의로 가득 찬 광부들마저 미웠소
유형,
쫓기는 사람들이 몸을 숨겨야 하는
반쪼가리 해가 뜨고 있소
술이 깬 해가 떠오르고 있서
자, 또 다시 일어나봅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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