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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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 창간준비3호

인종주의에 맞서는 미국의 경찰폭력반대 운동

정의위원회 임율산 사무처장 인터뷰

  • 인터뷰 진행 임월산 공공운수노조 국제국장
  • 인터뷰 정리 조은석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2014년 8월 9일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18살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은 백인 경찰 대런 윌슨(Darren Wilson)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목격자들은 윌슨이 수차례 총격을 가했을 때 브라운은 손을 들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사건으로 촉발된 대중적인 시위는 미주리 주를 비롯해 미국 여러 지역에서 수개월 동안 계속되고 있다. 

11월 24일 백인 9명, 흑인 3명으로 구성된 대배심은 윌슨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며칠 후인 12월 3일에 뉴욕 대배심은 에릭 가너라는 흑인 남성을 목조르기로 살해한 경찰 다니엘 판탈레오(Daniel Pantaleo)에 대해서도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두 사건에 대한 불기소 처분 판결 후에 대중적인 시위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에릭 가너가 마지막까지 반복했던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이 시위대의 구호가 되었다. 지난 12월 13일 뉴욕에서는 2만 5000 명이 거리 행진에 나섰고 워싱턴DC, 오클랜드 등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집회가 벌어졌다. 참가자들은 거리나 대교를 봉쇄하는 등 직접행동을 전개했지만 단발성 사건을 제외하면 시위는 전체적으로 질서 있는 가운데 비폭력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반면에 경찰들은 최루탄과 최루액을 사용하여 시위대를 여러 차례 과잉 진압했고 현재까지 수백 명이 연행되었다.

급속히 발전한 대중적 경찰폭력반대 운동의 배경과 잠재력을 보다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보다》는 뉴욕 경찰폭력반대 단체인 정의위원회(Justice Committee)의 임율산 사무처장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경찰폭력이 미국에서 전보다 더 큰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데, 왜 경찰폭력 사건이 더 많이 회자되고 또 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크게 표출되고 있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금의 경찰은 국가 기관이 되기 전부터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을 살해하거나 이들에게 잔혹한 짓을 하고 노동자를 탄압하고 반대자의 입을 막았던 역사가 있어요. 특히 남부의 경우 정식 경찰의 전신은 노예 사냥꾼들이에요. 본질적으로 경찰은 남북전쟁을 즈음하여 국가와 엘리트(그리고 그들의 재산)를 지키기 위해 탄생한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의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임율산 활동가
정의위원회는 경찰폭력과 구조적 인종주의에
맞선 미국 뉴욕 사회운동단체다.
오늘날의 경찰도 이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소득 지역의 고급주택화(젠트리피케이션)를 추진하고, 인종주의를 실천하며, 유색인(특히 청소년)을 범죄화하는 것입니다. 경찰 활동은 미국의 인종, 계급, 젠더로 이루어진 사회적 위계질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지탱하는 역할을 합니다. 경찰은 노숙인(주로 유색인이죠)을 몰아내고 이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상업화된 감옥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것인데, 그중에는 유색인이 불공평하게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요. 또 퀴어나 트랜스젠더,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나 이주민처럼 사회가 규정한 역할에 들어맞지 않는 이들도 일반적으로 표적으로 삼습니다. 

경찰은 이런 역할을 통해 자신들이 보호해야 하는 공동체의 이익을 지키고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착취와 억압을 근본으로 하는 체제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가로 국가와 사법 체계는 경찰 조직에 권력을 쥐어주고 죄를 묻지 않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 경찰 폭력 문제가 주목받는 분위기와 조건이 형성되고 있어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끔 하는 요인이 있습니다. 브라운 사건을 보면 전체 사건을 찍은 비디오가 있었죠. 사람들은 대중교육이나 경찰감시단(cop watch) 활동을 통해서 경찰 폭력을 촬영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경찰들은 사망한 마이클 브라운을 4시간이나 길거리에 방치했습니다. 이 사건은 인종주의적 경찰 활동, 그리고 인종주의를 오랜 동안 경험한 공동체에게 있어서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퍼거슨 시에서 일어난 시위는 뉴욕 시에서 운동이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어요. 특히 청년들과 새로운 활동가들 사이에서 그랬습니다. 고무된 저항운동, 직접행동, ‘민중권력’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정의위원회나 다른 미국의 사회단체들은 ‘깨진 유리창 방범’(broken windows policing)을 경찰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한다고 들었어요. 한국에서는 경찰의 군사화가 경찰폭력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임필수, <미국 경찰의 군사화, 반군 진압 '군대'로 다시 태어나다>, 레디앙 참고). 깨진 유리창 방법과 최근 경찰의 군사화 경향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깨진 유리창 방범은 폭력적이지 않은 위반 사항이나 무질서가 보일 때 경찰이 공격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중한 폭력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방범 이론이자 방법론입니다. 청소년들이 골목에 모여 있다거나, 노숙인, 그라피티(벽화), 성매매 같은 것들이 여기서 말하는 무질서에요. 이런 행동들은 먹고 살기 위한 경제활동이거나 비폭력적인 행위지만 지배층이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것들이에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구체적 데이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찰관들은 공동체 전체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에릭 가너 사건이 전형적인 예에요. 가너는 예전부터 면세 담배를 판매한 혐의로 경찰의 표적이 되어 왔었어요. 가너가 살해당했을 때 경관들은 가너가 면세 담배를 팔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는데, 목격자들 얘기는 가너가 싸움을 말리려던 중이었다고 해요. 결국 경찰은 당시 가너가 하지도 않으려던 행위를 이유로 가너를 체포하려 한 것이고 그게 살해로 이어진 겁니다.

9.11 테러 이후 군대와 경찰의 경계선이 모호해졌어요. ‘테러와의 전쟁’과 ‘국토안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 무슬림 공동체 등에 대한 대중 통제용 감시기술 사용이 늘어나고 경찰 대테러 부대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군대로부터 인사, 기술, 무기(최루탄, 고무총, 테이저건 같은 ‘비살상’ 무기)를 이전받고, 국토안보부와의 공동 활동을 하고, 경찰 기동타격대(SWAT)를 일상 경찰활동에 활용하는 등 군사화되었어요. 
 
 
 
마이클 브라운과 에릭 가너 사건에서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이 대중적 시위를 촉발시켰어요. 한국에는 대배심 기소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 제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요. 대배심원들은 왜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을까요?
 
미국의 사법 체계에서는 누군가를 형사상 중범죄로 정식 기소하기 위해서는 지방검사가 대배심을 소집하고, 대배심에서는 기소를 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 먼저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뉴욕 같은 경우 “지방검사는 햄 샌드위치 가지고도 기소할 수도 있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지방검사가 기소할 증거에 대해서 대배심을 설득하기 쉽다는 말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에릭 가너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촬영한 목격자는 총기 소지 혐의로 기소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사람을 죽인 경찰이 기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지방검사가 경찰을 조사하고 기소하는 데에 이해상충이 있기 때문이에요. 지방검사와 경찰은 매일 협조하며 업무를 위해 서로 의존하는 관계거든요.
 
뉴욕 브롱크스에서는 1994년 앤서니 바에즈(Anthony Baez), 2012년에는 라말레이 그레이험(Ramarley Graham)이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두 사건 모두 낸시 보르코(Nancy Borko)라는 지방검사가 맡았어요. 그런데 두 사건 모두 보르코 지방검사보가 대배심에게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실수’를 한 결과 기소가 무산되었습니다. 정의위원회의 요구 중 하나는 경찰폭력 사건은 지방검사가 아니라 특별검사에게 맡기자는 것으로 많은 유가족들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미국에서 전개된 대중적 운동으로 먼저 "점령하라(오큐파이 월스트리트; Occupy Wallstreet)!" 운동이 있었고, 지금 경찰폭력반대 운동이 있습니다. 경제위기 아래 나타나는 운동으로서 어떤 특징이 있나요?
 
"점령하라" 운동은 중산층들이 이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경찰폭력반대 운동의 기세가 붙은 것은 사람들이 인종차별적 국가 폭력을 처음 경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폭력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똑똑히 공개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경제위기의 결과로 흑인들과 다른 유색인들에 대한 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과 경찰폭력 및 억압의 증가 사이의 연관을 더 자세히 볼 필요는 있어요.

"점령하라" 운동과 경찰폭력반대 운동의 큰 차이점은 점령하라 운동의 리더들은 이전에는 불공정한 상황을 겪어 본 이들이 아니었던 반면, 유색인, 그중에서도 특히 흑인과 미국 원주민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종주의와 억압에 맞서 싸우면서 살아온 이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운동이 더 조직적이고 방향성이 있는 이유, 많은 단체들이 구체적인 요구를 제출하고 동시에 다양한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인종주의적 경찰 폭력과 그에 맞선 대중 투쟁은 굉장히 미국적 현상으로 보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종주의나 인간의 생명을 무시하는 태도와 미국 경찰폭력과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미국에서 경찰은 국가와 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위해 존재합니다. 미국 군대가 외국에 주둔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인 것이죠. 미국은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면 어디서고 전쟁을 벌이잖아요. 미국 국내의 경찰폭력을 보고 전 세계 민중들이 미국 군대의 경험을 떠 올린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비슷하게 한국 정부가 반대자들을 물리적으로 탄압하는 것도 비슷하게 전개되어 왔습니다. 한국에서 급진화된 (이주) 저소득 노동자를 공격하기 위해 억압적 국가기구를 활용하여 이주민 단속이나 도박 같은 작은 범죄를 표적 삼는 것도 비슷하지요. 또 중요한 것은 누가 한국인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주류의 인종주의적 화법 역시 국가 및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입니다. 흑인이나 다른 유색인들이 범죄자들에다 게으르다는 이야기가 미국에서는 경찰폭력을 정당화하고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질서를 공고히 하는 측면이 있어요. 제 추측에는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담론도 비슷한 효과를 가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의위원회와 미국 경찰폭력반대 운동의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이 저항은 장기적으로 계급적 반인종주의적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한국 사회단체들은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요?
 
​당면 계획으로 정의위원회와 연대 단체들은 11개 요구 사항을 제출했어요. 인터넷을 통해 thisstopstoday.org/demands 에 가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정의위원회의 장기 비전은 너무 이상적이라고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의 목소리와 요구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힘 있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자들이 통치하는 세계가 아니라요. 이러한 세상은 구조적 인종주의나 다른 형태의 억압에 민중들이 희생당하지 않고 경찰 같은 단속반의 손에 목숨을 잃거나 해코지 당할 걱정이 없는 뉴욕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 이를 위해 협력적인 국제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추구하려 합니다. 정의위원회의 활동은 뉴욕 시의 주변화된 공동체가 당국에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힘과 메커니즘을 보유하고, 도시를 관리하고 안전을 유지하는 원리와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고, 미국과 전 세계에서 정의를 위한 공동체 조직화와 의미 있는 연계를 맺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사회운동 단체들도 12월 17일(에릭 가너가 사망 후 5개월 째 되는 날) 연대 행동에 나섰다고 들었습니다. 에릭 가너의 유가족을 비롯해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다른 가족들, 뉴욕 시 민중들이 이러한 행동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국제적인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단체들이 미국의 군사주의와 인종주의가 해외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우리들의 투쟁이 어떻게 관련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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