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건강과 사회
  • 2015/01 창간준비3호

젊은 의사들은 왜 파업에 나섰을까?

내과 전공의 파업으로 본 상업화된 의료 현실

  • 이현수 의사
지난 11월 2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소속 내과 1년차 전공의*[1]들이 수련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워낙 수련환경이 열악한데다 신규 내과 전공의 지원마저 적어 인력부족 사태가 우려되자 병원과의 싸움에 나선 것이다. 결국 이들은 내과 교수들과의 면담을 통해 ‘전공의 수련환경의 획기적 개선’이라는 목표와 세부사항들에 합의하고 5일 후 파업을 철회했다. 비슷한 시기 순천향대 천안병원에서도 내과 1년차 전공의들이 수련환경 개선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집단 사표를 내겠다고 나서 병원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일이 있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직접적인 행동으로 가시화되고 있지 않지만 다른 병원 전공의들에게서도 수련환경 개선에 관한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공의들의 움직임은 상업화된 한국의 의료 현실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교육생인가, 값싼 의료 인력인가

전공의들은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동시에 수련과의 전문교육을 받아야 할 피교육생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인건비에 관한 한 전공의는 피교육생 신분으로 규정된다. 배우는 과정이니 저임금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병원에 고용된 노동자다. 병원이 원하는 대로 업무를 충실히 해내야 한다. 

노동권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는 한국의 전공의들은 주당 100시간이 넘는 살인적 노동 시간 동안 입원환자 주치의 역할부터 각종 검사 업무, 수술 보조 등 병원의 온갖 일을 해낸다. 교수나 연차가 높은 전공의들로부터 폭언이나 폭행을 당하는 일도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의료상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대형병원들은 외래환자 유치 확대를 위한 병원 신·증축, 의료의 본질에서 벗어난 수익사업 추구 등의 경영전략 추진에 여념이 없다. 저임금을 받으며 급증하는 노동 강도를 묵묵히 감내하는 전공의가 없었다면 대형병원들이 이렇게 비대하게 몸집 불리기를 하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자 전공의들도 병원 내에서 자신들의 신분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모양이다. 대한의사협회가 전공의 2014명을 대상으로 이중적 지위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2.7퍼센트가 ‘피교육생이자 근무자’라고 답했다. ‘근무자에 가깝다’거나 ‘근무자’라고 인식한 비율도 44.2퍼센트에 달했다. ‘피교육생에 가깝다’거나 ‘피교육생’이라는 응답은 고작 3.1퍼센트였다. 수련 병원들이 전공의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할 뿐 교육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하다보니, 전공의들도 스스로를 ‘값싼 의사인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체계 상업화가 노동 조건도 악화시키다

그동안 전공의들이 열악한 근무환경을 견뎌냈던 것은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문가적 권위와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의료체계 전반의 상업화에 따라 기존의 보상 체계도 왜곡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수도권의 대형병원들은 경쟁적으로 병상을 늘리고, 외래 진료를 확대면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야기했다. 이로 인해 전문의들은 대형병원에 취직하지 않으면 1차 의원, 2차 병원에서 대형병원과 경쟁해야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2]

전공의 지원에도 이러한 의료상업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급여 진료로 수익이 높은 이른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과 대형병원과의 경쟁이 적고 정부 정책에 의해 수요가 많아진 이른바 ‘정재영(정신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의 인기가 높아졌다. 반면에 수익이 나지 않아 대형병원 봉직의 자리가 드문 흉부외과, 진료 내용이 대형병원의 영역과 겹치는 내과와 외과, 다른 과들과 진료 영역이 겹치거나 시장이 좁은 비뇨기과, 출산율 등 사회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등이 기피 과에 속하게 된다. 

‘메이저 4개과’***[3]로 불리던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중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가 기피 과가 되는 현상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4] 최근에는 연이은 내과 전공의 파업사태에서 보듯이 내과마저도 기피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각 병원의 내과 지원자가 눈에 띄게 감소하였고, 이는 특히 지방 수련병원들에서 두드러졌다. 이처럼 수익에 따라 기피 과와 인기 과가 나뉘는 현실은 한국 의료체계가 얼마나 시장화 되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전공의 정원 결정부터 수련병원 선정과 교육까지, 총체적 문제 

전공의들의 열악한 수련환경 문제는 전공의 정원 결정 과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전공의 정원은 의료체계 전반에 걸쳐 중요한 부분이며 국가 의료전달 체계 확립과 의료수요 예측, 그리고 사회의 요구분석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는 수련 과정을 관장하는 독립적 기구가 전공의 정원 결정을 담당하거나 지방 자치단체 또는 국가 차원에서 이를 책정하고 조정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전공의 정원 결정의 권한을 일차적으로 대형병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한병원협회가 갖고 있다. 그 결과 병원은 ‘값싼 의사인력’인 전공의를 마음껏 쓰기 위해 전공의 정원을 무분별하게 증가해왔다. 2011년 기준으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은 3199명인데 인턴 정원은 3877명, 전공의 1년차 정원은 4063명으로 전공의 미달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수련 병원 선정과 수련 과정 평가 역시 병원협회에서 주도하고 있다. 그 때문에 전공의 교육에는 중점을 두기 어렵다. 전공의에 대한 교육이 가능한 수준의 병원인지 고려 없이 지도 전문의 숫자만 채우면 수련 병원으로 선정될 수 있다. 또한 교육내용도 의학적 지식의 습득에만 치중되어 있으며 대인관계법이나 윤리 등 의료·환자·사회의 삼각구도에서 알아야 하는 내용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임상 술기(기술)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의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임상 술기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전공의 수련을 마치는 일도 일반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내과 4년차 전공의들이 내시경과 초음파 등의 술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개원을 하더라도 제대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과 함께 의료 상업화를 막아야

내과 전공의 파업의 근본 원인은 계획과 규제가 없는 무분별한 상업화다. 대형병원의 몸집이 불어나는 이면에는 고통 받는 전공의들이 있었다.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고 대형병원의 경쟁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할 정부마저도 온갖 규제를 완화해주면서 의료상업화를 위한 군불을 때는 양상을 보여 왔다. 이에 더해 박근혜 정부는 원격의료, 의료민영화 정책을 도입해 이러한 상황에 기름을 부으려 하고 있다.

이는 결국 환자들의 건강권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의료 인력이 충분하지 않고 전공의들은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대형병원의 의료의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또한 1차 의원, 2차 병원들은 대형병원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가 늘고 의료의 질은 하락하고 있다. 결국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고 의료 전반의 질이 하락하며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다.

단기적으로 전공의 수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주장대로 독립적 수련 환경 평가 기구의 설립과 입원전담전문의 고용 등 전공의 수련 환경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수한 의료 인력 양성과 수련 병원에서의 질 높은 진료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전공의들이 수련을 마친 후 소신껏 양심 진료를 펼치고 싶다면, 정부와 대형병원이 만들고 있는 의료상업화의 흐름에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의사들이 주체적으로 의료상업화 반대에 대한 흐름을 만들면서 너른 지지를 얻는다면, 실질적인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국민과 의사가 함께 건강한 보건의료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Footnotes

  1. ^ 전문의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하여 수련을 받는 인턴 및 레지던트를 말한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의사가 되며 이들을 일반의라고 부른다. 일반의가 내과, 외과 등 각 과의 전문의가 되려면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의 과정을 거치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2. ^ 1차 의료기관은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단일과목을 진료하는 의원(30병상 이하)이나 병원(30~100병상)이다. 2차 의료기관은 4가지 이상의 진료과목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100병상 이상을 갖춘 곳이다. 3차 의료기관은 모든 진료과목이 있고 1~2차 의료기관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이용하는 병원으로 대학병원은 500병상, 대학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은 700병상 이상을 갖춰야 한다.
  3. ^ 환자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중요한 과라는 뜻.
  4. ^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정부의 수가 가산 정책과 봉급 인상 등으로 인해 최근에는 기피현상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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