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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 창간준비3호

님아 그런 안전 대책은 꺼내지 마오

박근혜 정부의 안전산업 육성 비판

  • 박상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
‘안전’이라는 말은 일견 중립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떻게 공공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이견이 있고, 그 배경에는 양립하기 어려운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에서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제 사례는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지하철 안전인력을 둘러싼 입장일 것이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과 지하철노동조합은 사고의 원인으로 ‘1인승무제’를 지적하며 인력충원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지하철공사는 반대로 자동화를 통해 인력을 더욱 줄였다. 지금 대구지하철의 역무원은 사고 당시보다 적다.

어떻게 이렇게 반대로 갈 수 있을까? 정부와 기업은 ‘실수를 막는 최고의 방안은 자동화’라는 안전철학과 어찌되었건 비용 절감을 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유가족과 노동조합은 자동화는 오류가 있기 마련이니 충분한 인력확보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니 양측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대형사고가 발생한 후 사회적 논의를 통해 대책을 도출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참사 이후 사회를 재구성하는 권한은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들은 대립되는 입장 중 한 가지만 선택하면서 그것이 유일한 대책인양 선전해왔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지금까지의 모든 대책이 공공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음을 증명했다.  

반년을 훌쩍 넘긴 투쟁을 통해 이제 곧 ‘세월호 참사 특별위원회’가 출범한다. 한계는 있겠지만 모두가 이 특별위원회를 통해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불안하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안전대책의 방향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정부 대책의 최대수혜자: 안전 관련 기업과 보험사

박근혜 정부 안전정책의 핵심은 ‘안전산업 육성’이다. 안전산업은 크게 안전장비와 안전서비스로 나누어진다. 안전장비는 화재감지센서, 안전화, 방호복 등 각종 장비와 부품·제품을 가리키고, 안전서비스는 재해예방을 위한 진단, 사후복구 대응인력과 시스템을 제공하는 역할을 뜻한다(산업연구원, <안전산업의 주요국 육성사례와 우리의 발전 방안>, 《산업경제》 2014년 11월호).

정부는 지난 9월 23일 발표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기본방향>에서 안전산업을 ‘재난예방 차원을 넘어 미래 유망산업 관점에서 지원·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의 안전예산안에는 민간의 안전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안전투자펀드’ 계획도 있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의 역할을 자본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민간기업으로선 수익을 챙겨야하니, 공공성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모델로 삼고자 하는 글로벌 안전기업 사례를 보면 보안 컨설팅, 위험관리 컨설팅, 건물안전 및 방화시설 검사 등이 주요 업무다. 그런데 이러한 컨설팅 및 안전진단은 보험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선급’(선박의 등급) 제도는 최초의 근대적 보험인 해상보험과 더불어 탄생했다. 선박 종류, 항해구역, 적재하는 화물이 각각 다양한 가운데 선박을 평가할 기준이 있어야 보험료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은데, 세월호와 같은 대형 여객선은 선급 기관에서 선박 안전검사를 받아야만 보험 가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진단을 보험사의 위험평가로 대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보험업과 안전을 연계한다는 것은 피보험 회사가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안전기준을 더 높일 것이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런 가정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보험료로 절약되는 비용보다 안전기준을 높이는 비용이 더 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산업재해의 경우를 떠올리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 잘 드러난다. 한국의 기업은 보험료가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산업재해를 감추는 데에 더 힘을 쏟는다. 이런 문제를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 가운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방재컨설팅 업무를 보험사의 부수업무로 허용하고 화재보험협회에 기존 화재예방 말고도 폭발이나 붕괴 위험까지 안전점검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 안전에 대한 의도적 무시

정부 안전정책의 또 다른 특징은 노동자의 안전문제가 그 어디에도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사고와 재해피해를 비교해보자. 한국은 인구가 일본의 절반이니 사고건 수와 사망자 수도 대략 절반이 되어야 하는데 산재사망의 경우 일본의 6배에 이른다. 이는 한국정부와 기업이 그동안 산재사망자 수를 줄이는 데 무신경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산업재해는 왜 발생할까? 무작위로 발생할 몇 명의 목숨보다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비용을 더 아까워하고, 규정된 안전수칙을 실제로는 지킬 수 없도록 만드는 생산 압력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산업재해의 원인은 바로 대형사고의 원인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대형사고의 가능성은 커진다. 항공·철도·버스·선박 등 공공교통에서 인적 실수는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다. 이런 실수는 장시간 노동과 심한 노동강도로 노동자의 피로가 극심할 때,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제 시간에 도착해야한다는 압박으로 위험신호를 무시할 때 발생한다.

건설현장의 높은 사고율 역시 비용절감을 위해 공사기간을 단축하려는 관행 때문에 낮아지지 않는다. 이는 결국 부실공사를 낳고, 부실공사는 건물의 내구성을 해쳐 건물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한국이 세계적인 건물붕괴 사망자 수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1984년 인도에서 발생한 보팔 가스누출 사고는 노동자 산재가 대형사고의 전조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고가 난 공장에서 1981년 12월 가스누출로 인해 노동자 1명이 사망했고, 이듬해 1월에는 24명이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는 지역주민 수백 명이 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조합이 공장 앞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등 투쟁했지만 대답은 탄압과 해고였을 뿐 안전조치는 취해지지 않았고, 하룻밤 사이 2000명이 죽는 참사가 발생했다. 노동자 안전을 무시한 결과가 만든 참극이었다. 작업장의 안전은 그 자체로 지향되어야 할 목표임과 동시에 공공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우선 과제다.


기업에 의한 규제포획, 기업을 위한 규제 길로틴 

이전까지의 사고원인 분석이 주로 사고를 발생시킨 직접적이고 기술적인 원인에만 한정되었다면, 최근에는 국가정책이나 기업의 조직문화 등 사회구조적 원인까지 원인으로 분석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그런 점에서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일본의 국회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 보고서가 주목할 만하다. 조사위는 ‘규제포획’을 주요 원인으로 삼으며 도쿄전력 및 정부 규제기관에 책임을 물었다. ‘규제포획’이란 규제기관이 규제대상인 기업에게 오히려 포획되어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런 현상이 핵산업계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정부와 도쿄전력은 ‘상정했던 경우를 넘어서는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불가피했던 자연재해임을 강조했으나, 조사위는 도쿄전력과 원자력규제위원회의 관계가 역전되어 감시·감독 기능이 붕괴됐음을 간파해 ‘인재’로 결론지었다.

이렇게 규제기관이 오히려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현상은 한국에도 만연하다. 심지어 한국에선 기업 로비 이상으로 정부가 먼저 나서서 규제완화를 외쳤고, 그 결과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선령제한과 선박안전점검 기준, 선주의 양벌규정 등에 대한 규제완화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언론에서 집중포화를 맞은 일부 규제만 원상회복하겠다고 할 뿐 규제완화 정책 전반은 전혀 재검토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규제 길로틴(단두대)’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며 규제완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규제완화가 안전을 위협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 없이 안전 사회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다.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우리나라는 대형참사가 일어나면 드러난 문제를 시민들과 함께 해결하기보다 국가가 국민을 동원하는 기회로 삼아왔다. 또한 최근에는 사고를 빌미로 새로운 규제완화나 산업육성이 필요하다는 해괴한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등장했다. 새로운 산업육성책으로 둔갑한 안전대책, 규제완화 밀어붙이기, 국민안전처장에 전 합참차장을 임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그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특별위원회 내 안전사회소위원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추천한 인사들, 즉 정부의 안전대책에 의문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논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정부가 이미 확정한 대책에 의견 한마디를 보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후 대책을 함께 구성할 권리가 열린 것이다. 

이보다 더 큰 희망 역시 있다. 바로 세월호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안전의 문제가 보험 상품의 선택이나 첨단안전장비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안전대책을 시민과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론장으로 끌고 와야 한다. 정부의 대책이 정말 안전을 담보해줄 수 있냐고 공개적으로 물어야 한다. 304명의 생명을 눈앞에서 잃은 우리에게 이것은 마땅히 주어져야 할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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