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5/01 창간준비3호

신선한 스마트폰을 위해 치르는 대가

  •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스마트폰은 야채와 같다. 시들기 전에 팔아야 한다. 신규 모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데 여유부릴 틈이 없다. 구형 모델이 되는 순간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묵혀두면 상하는 것이다. 시장 흐름을 탔다고 판단하면 물량 공급을 늘리고, 장사가 영 안 된다 싶으면 생산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재고 없이 생산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공급사슬 관리에 주력하는 이유다.  

공급사슬 관리란 언제 어디서 얼마나 팔릴지 예상하고, 어떻게 생산할지를 시시때때로 점검하여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한마디로 일사불란한 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크게 세 축에서 손발이 맞아야 한다. 

우선 판매 예측에 따라 생산 계획을 결정하기 위해 부서별 손발을 맞춘다. 영업부서가 시장동향을 분석해 생산부서와 공유하고, 생산부서 역시 원자재가 얼마나 있고 공장을 얼마나 가동할 수 있는지를 공유한다. 

다음으로는 지역별로 손발이 맞아야 한다.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모두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도 공장이 있다. 프랑스에 스마트폰을 조달하기 위해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할지 구미공장에서 생산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하청의 손발을 맞춘다. 원청 대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하청으로부터 상당부분 조달 받는다. 원청이 생산계획을 하청에 알리고 하청 역시 자신의 생산능력을 원청과 공유한다. 이처럼 부서, 지역, 원하청의 손발을 맞춰 일사불란하게 생산하기 위해서 삼성전자나 엘지전자는 매주 판매 및 운영회의를 진행하면서 계획을 수립한다. 

이를 위해서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부서별, 지역별, 원하청 간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통합적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하나의 회사에 인트라넷이 구축되는 것처럼 원청은 하청을 포괄하여 정보통신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원하청 간의 공동 생산원칙이다. 3일 확정체제라는 원칙으로, 3일 동안에는 변동 사항이 있더라도 계획대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원청은 100퍼센트 납품을 인수하고 하청도 100퍼센트 납품한다는 약속이다.     

하청업체는 원청대기업의 생산부서처럼 손발을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제품이 잘 팔리지 않으면 남이 된다. 원청이 100퍼센트 인수 원칙을 어기고 발주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일이 발생한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삼성과 엘지의 부당 발주 취소를 지적했다. 그리고 대기업들은 동일한 부품을 다수의 부품업체로부터 공급 받으면서 일상적으로 단가인하 경쟁을 시킨다. 
 
 

하청의 하청을 통한 비용 절감

스마트폰 제조사가 하청업체를 통해 위험 부담을 떠넘기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이유는, 핵심부품은 대기업 자사와 계열사가 생산하고 하청업체들은 범용 부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은 연산, 디스플레이, 카메라 등으로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의 계열사가 직접 생산한다. 하지만 그 외의 범용 부품은 손쉽게 대체될 수 있는 복수의 하청업체들이 생산하고 있어 위계서열의 하위에 놓이는 것이다.

그 결과 최근 3년 간 국내 휴대폰 하청업체들의 매출액은 크게 올랐지만 수익성은 제자리다. 삼성전자 휴대폰 하청업체 50개를 조사한 결과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매년 20퍼센트 이상씩 매출액이 성장했다(전기전자산업의 노동시장 현황과 조직화 방안, 2014,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그러나 영업이익률은 2011년에 6.4퍼센트였으나 2013년에는 5.4퍼센트로 하락했다. 반면 삼성전자 휴대폰사업부는 매출액 상승과 더불어 영업이익도 크게 높아졌다. 2011년 64조 6000억 원이던 매출액은 2013년에 두 배가 되어 138조 8000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역시 8.2퍼센트에서 2013년에 18.0퍼센트로 뛰어 올랐다. 

삼성의 눈부신 성장과 대조적으로 삼성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급여는 제자리다. 50개 하청업체의 매출원가 중 제조원가 노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8.9퍼센트에서 2013년 8.6퍼센트로 오히려 감소했다. 삼성전자의 수익성 고공행진이 하청업체 생산직 노동자의 급여 상승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임금 상승 지체와 더불어 나타나는 하청업체들의 특징은 외주가공비가 매출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외주가공비란 제조업체들이 사내하청이나 파견업체의 도급 비용과 외부하청업체의 도급비를 포괄하기 때문에 외주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제조업과 전자부품업체들의 매출원가 대비 외주가공비 비중은 6퍼센트 수준에 머문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하청업체들은 17퍼센트로 거의 세 배 가까이 높다. 즉 직접 고용 노동자를 최소화하고 저임금의 고용이 불안한 노동자를 파견이나 하청을 통해 쓰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탄력적 생산에 대처하는 하청업체의 수익전략은 저임금을 기본으로 하여, 사내 간접고용 노동자 활용, 하위 하청업체 활용하는 것임이 확인된다. 하청업체들은 물량이 줄면 우선 자기보다 아래 단계 하청업체를 완충지 삼는다. 최대 생산 물량에 맞춰 설비를 갖추기보다 일부는 하위 하청업체에 맡기다가 물량 감소 시기에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하청업체 내부의 사내하청을 줄이는 방법을 쓴다. 소사장제를 쓰기도 하고 파견노동자를 쓰기도 하는데 공통적으로 일감이 없으면 순식간에 노동자들을 내보낸다. 사내하청을 폐업하거나 파견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다. 휴대폰 부품 공장에서는 일하던 사람이 500명이다가 200명이다가 하는 일은 다반사다.

하청업체는 물량이 많을 때 초장시간 노동을 강요한다. 특근이 한 달에 160시간에 육박하기도 하는데,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도 출근한 날이 더 많다는 얘기다. 어떤 부품사의 노동자는 한 달에 24시간을 쉰다고 했다. 설비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 교대제로 24시간 가동하는 업체였는데 쉬는 날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견디다 못해 다른 업체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 근속년수도 짧다.


탄력적 생산 = 불안한 노동 

물량의 증감에 따라 고용과 노동시간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반발 없이 지시에 따르도록 통제하는 것은 하청업체의 중요한 능력이다. 일상적으로 강압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복장을 통제한다거나 떠드는 사람이나 껌 씹는 사람을 지적한다거나 화장실도 자주 가지 말라는 핀잔을 주기도 한다. 연일 이어지는 장시간 잔업에 지친 노동자가 설사병으로 잔업을 거부하자 기저귀 차고 일하라는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  

삼성이나 엘지의 입장에서는 제품의 특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하청노동자에게는 탄력적 생산이란 결국 임금과 고용이 불안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청이 발주를 취소하거나 물량을 줄여버리면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이 줄거나, 계약 해지를 당한다. 일상적 단가인하 압력에 하청업체들은 노동비용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저임금이 일반화 되어 있고, 노동자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상위 밴더 하청들은 하위 밴더 하청으로 외주화하며 비용을 절감한다. 한마디로 하청노동자의 체계적 착취를 자양분삼아 ‘신선한’ 스마트폰 산업이 성장하는 것이다.
 

소리 없는 구조조정

하지만 2014년부터 스마트폰 산업의 성장세는 꺾이는 추세다. 파죽지세로 커가던 고가의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 상태고, 이제 중저가용 스마트폰 시장이 새로운 격전지로 거론된다. 중저가용 시장에서는 누가 더 싸게 공급하느냐의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게다가 삼성전자의 실적이 저조하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된다. 스마트폰 산업의 찬란했던 시기는 지나가고 위기가 몰아닥칠 것이다. 산업이 성장가도였다고 해서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없었지만, 위기 시기에는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고통이 전가될 것이다. 올해는 곧 시작될 소리 없는 구조조정을 대비를 해야 할 때다. 
 

애플이나 삼성이나 : 아이폰6를 만드는 노동자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영국 BBC의 보도에 따르면 아이폰6를 만드는 중국 노동자들이 여전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2010년 아이폰의 하청업체인 폭스콘에서 14명의 노동자들이 자살한 사건 이후에도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위장 취업을 한 두 기자는 18시간, 16시간 동안 연속 근무를 했다. 초과근무는 지원자에 한해서 하도록 되어 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좁은 기숙사에서 12명의 노동자가 생활한다. 한 기자는 "스트레스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수도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또한 애플에 공급되는 주석을 캐는 인도네시아의 광산에서는 아동노동이 동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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