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4/12 창간준비2호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
‘법 없이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프란체스코 교종과 같이 존경받는 성직자를 두고 하는 말인지, 한국의 전직 대통령을 두고 쓰는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쓰인다. 그러면 ‘법 없이 못 살 사람’은 누구일가? 언뜻 법을 밥벌이로 하는 법률가들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사실 통치 수단으로 법을 필요로 하는 위정자들과 거대 권력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켜야 하는 시민 모두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런데 법도 사람이 만든 것인지라 언제나 한계를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논란을 일으킨다. 법이 갖는 한계와 불안정성은 여러 측면에서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법 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은 법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을 집약적으로 담아낸 어구다. 1970년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은 준수하라’고 외쳤지만, 30년이 넘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근로기준법은 잘 지켜지지가 않는다. 알바생들에게 최저임금 위반이나 임금체불 등이 일어났을 때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주면, 바로 듣는 대답은 ‘그러면 짤리잖아요?’다. 그렇다고 ‘법대로 해!’라는 말하기도 힘들다. 법대로 하면 설사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이다. 2007년 이랜드 홈에버 투쟁 당시 농성장 근처에서 모여 있다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연행되었던 이들이 최근 7년 만에 무죄를 받은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법이 더 무서운 점은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데 있다. 법은 종종 의도적으로 무지한 모양을 띤다. 명확하고 체계적이어야 할 법에 실상 별다른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을 해석하는 사법절차를 통해서 그 폭력적 본성을 드러내며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제24조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무엇인지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그리고 지난 11월 13일 우리는 대법원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았던 고등법원의 결과를 뒤집는 것을 보면서 무지의 법이 가지는 잔혹성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 한번 무지한 법을 둘러싼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어떤 정당이면 해산을 당해야 할까? 헌법재판소법 제55조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법은 어떤 정당이 해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에 담아두고 있지 않다. 결국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가 결국 법이 담고 있는 유일한 내용인 셈이다. 매번 선거 때마다 공직선거법을 위반해서 선거를 무효로 만드는 당선자들을 무더기 공천했던 거대 정당도 해산심판 청구를 받지 않았는데, 왜 통합진보당이 해산심판의 대상인지 묻는 질문도, 아니 작년 11월에 정당해산심판이 청구된 이후에도 있었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을 선택한 수십만 유권자들의 판단과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이 들지 않는다면 이상할 노릇이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014년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법과 법원이 제 아무리 중립적인 외관을 취하더라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오래된 진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