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시선
  • 2014/12 창간준비2호

노조 할 이유

  • 유진 사회진보연대 회원
내년 초 결혼을 앞두고 큰 걱정이 하나 있다. 나는 노조에서 일하고 있는데 신랑 될 친구 회사에서는 노조가 ‘금기’다. 자주 만나는 그의 동료들에게도 정체를 못 밝혔다. 사람들이 조끼입고 오면 어쩌나, 여기저기 노조 얘기가 들려서 걔네 회사 애들이랑 틀어지지 않을까. 짤리지 않을까. 그 전에 정체를 밝히면 어떨까. 아님 아예 노조를 만들면 어떨까.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결혼 전엔 어렵겠다. 그날을 잘 넘길 미션을 준비해야겠다.
 
요즘 어딜 가나 ‘전략조직화’, ‘미조직 사업’이 화두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배들이 이제 곧 정년퇴직할 텐데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지 않으니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조가 자기 이권을 놓고 사회운동적으로 거듭나야 하며, 핵심은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라는 게 다수 운동세력의 주장이자 노동조합의 전략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노동권이 아무리 바닥이래도 노동조합 이미지도 바닥이다 보니 노조 해보겠다고 마음먹기도 어렵고, 만들고 지키기도 참 어렵다. 수년간 진행되어 온 각종 전략조직사업들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큰 것 같다. 내가 활동하는 노조 운영위원(사업장 대표자)들 의견을 듣다보면 기금모금, 활동가 채용, 캠페인으로 이어지는 사업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당장 그를 대체할 쌈빡한 기획을 내놓으라기보다 ‘다른 접근’을 요구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전략을 밝히고 하는 게 무슨 전략조직화야?” 

지부 사업장 간부들은 매주 자기 지역의 공단과 시내에 나가 직접 캠페인을 했다. 지역으로 나가 노조할 권리를 나누자는 뜻에서다. 전략조직화 선전물을 나눠주고 커피트럭을 끌고 나가고, 세월호 등 사회 정치적 이슈까지 들고 나갔다. 시간, 장소, 방법을 바꿔 공단 노동자들에게 어필하려고 했다. 그런데 늘 뭔가 부족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전략조직화 할 거거든! 이렇게 밝히고 하는 게 무슨 전략조직화야? 그러면 회사가 단속할 시간만 주는 거 아니야? 준비도 안 된 노동자들한테 오히려 폐 끼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왜 넌 조직이고 난 미조직이냐?” 

‘떼인 임금 받아드립니다.’ 민주노총이 만든 임금계산 어플을 홍보하는 문구다. 시대의 모습에 맞춰가려는 노고에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바로 걱정도 따른다. 떼인 임금 받겠다고 찾아온 사람이 노조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그보다 더 많은 걸 잃을 텐데. 
 
‘미조직사업’하면 우리는 사람들이 움직일만한 ‘불만’을 먼저 찾는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도 해본다. ‘불만’이 노조를 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공통의 불만(총노동의제?)을 찾는 건 너무 어려운 시대니까. 떼인 임금 받자고 있는 직장 포기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노조에 한 번 걸어보자 하려면 적어도 몇 천 정도는 걸려 있어야 돼’하며 큰 불만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만이 ‘노조 할 이유’인 이들이 만든 노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들을 참 많이도 봤다. 불만은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불만이 현실을 바꿀 힘이 되려면 다른 ‘이유’가 필요할 것 같다. 이해관계에 있어선 자본에게 더 여력이 많으니까 말이다.

내가 만약 노조 없는 노동자라면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볼까 생각해본다. 아마 ‘니들이 뭔데 니들은 조직이고 나는 미조직이냐?’ 이렇게 느낄 것 같다. 이 사회의 특별한 계층이자 소수인 우리 노조가, 대다수 노조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아 이리오라고 한다. 아마 내게 ‘노조 할 이유’가 없고, 노조의 모습이 나에게 ‘노조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면 별 감흥은 없을 것 같다. 우리 조합원, 간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노조 할 떳떳한 이유가 있어야 남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자연히 생길 것이다. 

 
노조 할 이유

작아도 단단한 노조, 커도 촘촘한 노조.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건 ‘이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누구도 함부로 나와 내 관계를 어찌 할 수 없다는 자존감’이었다. 길지 않은 경험 속에서 내가 찾은 노조 할 이유는 이거다. 그들은 임단협 집회에서 ‘임금이 뭐 중요합니까’라 말하고, 파업을 해도 꼭 2014년 요구안 쟁취를 걸지 않고 어려운 곳에 힘 실어주러 간다. 가족과 주위에 인정받는 노조를 하려고 노력하며, ‘민중을 위한’이라고 등에 써 붙이고는 거리에 나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삼보일배를 한다. 퇴직을 앞둔 조합원들의 지속적인 운동을 위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회사가 폐업한다 해도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계열사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해 파업을 하고 노조가 없는 회사 앞에 난장을 깔았다. 새로운 세대들의 노조 활동을 위해 딱딱하고 네모진 노조 말고 쉽고 편하고 즐거운 노동조합 활동을 만들고자 한다. 작은 일 하나에도 그냥 하던 대로 안 하려고 자기 모습을 돌아보고 정성을 다한다. 

그들의 노조 하는 이유가 그들의 가족, 노조가 없는 친구들, 이제 노조를 떠날 거라 생각했던 선배들,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노조 한 번 해볼 만 한 이유로 다가가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내년에도 노조를 할 떳떳한 이유를 확산하기 위해 한 해 사업을 준비한다. 

오랫동안 의욕적으로 벌여온 미조직사업의 성과가 무엇인가. 그를 지속하기 위해 또 돈을 걷어야 하는가. 매년 예산을 논의할 때 꾸준히 등장하는 논란이다. 아예 달리 접근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조직된 노조의 위기 탈출을 위해 조직해야 하는 대상이나 특별한 미조직노동자 집단으로 보통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들의 삶에서 노조 할 이유를 키워가는 것, 우리 조합원들에게 노조 권할 이유를 키워가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미조직 담당자의 전문분야에 머물지 않고 조직의 온 역량이 다 같이 정성을 들일 수 있는 노동조합 분위기도 만들어질 것 같다.
 
짧은 지면에 거친 고민을 털어놓느라, 같은 과제를 안고 오래 고생한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어쩌나 우려가 앞선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자는 건데? 묻는다면 술 한 잔 하면서 얘기해보자고 하고 싶다. 다만 내가 ‘조직, 미조직, 그 외 사람. 각각의 관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닌데 연속적인 관계 위에서 접근해보는 게 어떨까?’하고 생각해봤다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우리의 고민이 만나고 노력이 결실을 낳아서, 언젠가 예비 신랑의 직장동료들과 이런 대화를 나눠보길 기대한다. “나 사실 … 노조 활동해.” “그래? 우와, 좋은 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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