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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 창간준비2호

“내 꿈은 건설노동자의 단결”

건설노조 경인지역본부 김태완 조직부장 인터뷰

  • 김태완 건설노조 경인지역본부 조직부장
안녕하세요? 건설노조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1981년에 부산에서 태어나서 학생 때는 부산에서 살았어요. 20살에 처음 서울생활을 시작했어요. 학창시절에는 일본문화 오타쿠였어요. 만화, 애니, 드라마 같은 거. 서브컬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야 할까. 중학교 때 친구들하고 게임도 만든 적이 있었으니까 말이죠. 다행히 친구들은 많았는데, 한때는 이틀에 한번 꼴로 주먹질할 정도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남자애들 사이에 통하는 질서가 있잖아요. 저는 힘 있는 축은 아니었는데 그 질서에 그냥 순응하긴 싫어서 그냥 싸웠던 것 같아요. 누가 나한테 심부름 같은 거 시키려고 하면 가만히 있지 못했거든요. 한 1년 그렇게 하니까 서로 조용해졌죠. 약한 애들 괴롭힌 건 당연히 아니었고요. 
 
 
아무래도 그런 기질이 운동하는 데 영향이 있었겠죠?
약한 쪽에 동화를 많이 했던 편이에요. 대학 들어와서 일인데, 동기 중에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여럿이 같이 다니고 그랬는데, 다른 친구들이 자기들 피곤하니까 이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약간 따돌리는 거에요. 그중에 과학생회 활동을 하던 선배도 있었는데 그 앞에서 대놓고 어찌 그럴 수 있냐고 뭐라고 했어요. 그렇게 선배들하고 싸우고 동아리를 찾아 갔어요. 
 
어떤 동아리였어요?
근현대사 연구회였는데, 첫 집회로 매향리 미군폭격장에 갔었으니 어떤 동아리였는지는 짐작이 가시죠? 그런데 집회도 별 생각이 있어서 나간 건 아니었고, 1학년 때 교수님이 학점 준다니까 간 거였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놀다가,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2학년 때였어요. 당시 동아리연합회 회장이 저를 설득하느라 공을 많이 들였는데, 둘이 논쟁을 했어요. 주제는 조국과 민족이 허구냐 아니냐를 두고 먼저 할 말이 없어진 사람이 지는 것으로 해서요. 제가 지면 430문화제를 가고, 제가 이기면 그 사람이 한총련출범식을 가는 걸로 내기를 걸였지요. 제가 그래서 그해에 430 문화제를 갔어요. 
어디서 막혔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렇게 소위 좌파계열 학생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동연회장을 하다가 군대를 다녀오니 동아리가 망해가고 있었어요. 결국 제대하고 법대하고 동아리하고 둘 다 챙기면서 꽤 다시 살려내기도 했어요. 
 
졸업할 즈음 일반 회사 면접도 몇 번 갔는데, 갈 때마다 이랜드 파업 얘기를 물어보더라구요. 그때 입이 안 떨어졌어요.
운동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군대 가기 전 동아리연합회 회장을 했던 때였는데, 당시 한국통신 비정규직 수배자 두 명하고 한두 달 정도 학생회실에서 같이 생활을 했어요. 형 동생하면서 술도 마시도 얘기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그때 진심으로 운동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전에 생각하던 운동은 좀 추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운동이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러다가 한통 비정규직을 보면서 운동을 실체로서 느끼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100원이라도 나아지는 현실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론과 이념을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받은 적도 있지만, 저도 이론과 이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학교 졸업할 즈음에는 미래가 불안하니까 일반 회사 면접도 보러 다녔어요. 학점도 사실 나쁜 편은 아니었거든요. 면접도 몇 번 갔는데, 갈 때마다 이랜드 파업 얘기를 물어보더라구요. 그때 입이 안 떨어졌어요. 면접관이 요구하는 답을 할 수도 있었고, 소신껏 대답을 할 수도 있었는데, 뭔가가 계속 맘에 걸리더라구요. 그때 이왕 이럴 거면 나중에 그만 두는 일이 있어도 한번 진지하게 운동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공노조 서경지부에서 학교비정규직 조직담당자로 사회운동을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한 노조 활동이 녹록치는 않았죠?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어려운 사업장의 조직화나 교섭을 하면서 패배한 일도 많았구요. 조직화나 교섭을 다 책임져야 했던 일도 있었는데, 그러다 8개월 장투 사업장에서 졌어요. 그게 롯데손보였는데, 정말 굴욕적인 합의를 처음으로 했었거든요.
2011년 홍대 청소용역노동자 투쟁이 끝나고 롯데손보 빌딩 조직화 사업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빌딩 시설관리 조직화 사업에서 사측의 탄압은 대학 청소용역에서 경험한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죠. 사측은 바로 용역깡패를 투입하고 형사소송 및 전방위적 탄압을 걸어 왔어요.
 
 
마지막에는 조합원 7명이 남았어요. 체불과 위로금을 받고 해고에 동의하는 것으로 결정했어요. 아직도 그때 생각이나요. 마지막으로 조합원들하고 노래 부르고 서로 안아줬어요. 저는 너무 미안했는데, 조합원들이 저를 원망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우리 부장 고생했다고. 그리고 그 이후에 쌓인 게 터졌던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겠다고 했죠. 닥친 투쟁이 있어서 실제로 정리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그 동안 서경지부 동지들이 많이 배려해주어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에요. 
 
빌딩 조직화 모델 만들기가 쉽진 않았죠?
쉽지 않았죠. 하지만 어려운 투쟁을 하면서 노조 투쟁의 기본을 배웠던 것 같아요. 산업적 특성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노동조합의 생리와 원리를 체득하게 된 것 같아요. 요구를 모으고, 투쟁을 하고, 합의를 만들고 하는 틀. 또 서경이 간접고용이었고, 건설도 마찬가지이구요. 
21세기에 일요일에 쉬자고 싸우다니.
그때 이걸 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건설노조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원래는 서경지부를 그만둘 때 운동을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퇴직금 털어서 유럽 여행을 다녀왔지요. 프라하도 가고 그람시 무덤도 가고 피렌체도 가고. 다녀왔더니 건설노조로 가라는 강권에 가까운 제안을 받았어요. 
그때 본 동영상 중에 ‘노가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있었는데 건설노동자들의 체불, 투쟁, 조직화를 다룬 얘기였어요. 거기서 본 이야기 중 ‘일요일에는 쉬자’라는 것이 있었어요. 21세기에 일요일에 쉬자고 싸우다니. 그때 이걸 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기원 지부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뒤에 수도권본부 조직국장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노조에서 하는 건설기능학교에 가서 일을 배웠어요. 매일 저녁에 망치질하고 기술 배우고, 일주일에 보통 두 번, 많게는 세 번 현장에서 일을 했어요. 빠지면 안 되는 회의는 들어가고 하면서 두 달 정도를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건설노조에는 건설기계, 토목건축, 타워크레인, 전기원 등 4개의 분과가 있다. 건설기계 분과는 덤프트럭이나 굴삭기 같은 장비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다. 현재 15톤 덤프가 주축인데, 건설현장에는 25톤 덤프가 주축이 되어가고 있고, 이들 조직화가 건설노조의 주 사업 중 하나다. 토목건축 분과는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목수,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내장 목수, 철근공, 벽돌을 쌓는 조적공, 미장공 등 일용직을 조직하고 있는데, 10~15명이 팀을 이뤄 업체에 고용되며, 한 달 계약이 보통이다. 팀장은 작업배치부터 임금 배분까지 거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팀을 일종의 도급업체처럼 운영한다. 타워크레인 분과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조직한다. 타워크레인 분과는 높은 조직률을 바탕으로 노동시장을 통제하고 있다. 전기원 지부는 한국 전력공사로부터 도급을 받아 송배전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비슷하다.
 
현장 일과 노조 활동을 동시에 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어땠나요?
첫 날은 실수했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구요. 너무 힘들어서. 여름이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혼이 빠지더라구요. 정신이 없어서 위에서 십반생(10mm 철근)이 떨어지는데도 그냥 맞고 있었을 정도에요. 안전모 썼으니 다행이었지요. 그런데 또 일을 하다 보니까 조금 할만해졌어요. 수도권 본부에서 배려를 해 줘서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현장에서 쓰는 말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 뒤로는 돌아와서 본부가 분할되고 지금은 경인본부에서 일하고 있는거죠. 그럼 지금은 일상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어요?
수도권본부 시절에는 현장 투쟁을 배우는 차원에서 투쟁 지원을 주로 했어요. 저는 기계지부에 있었는데 기계지부가 투쟁을 많이 하니까 그걸 지원하는 역할이었죠. 투쟁 계획 논의나 교섭을 같이 하고, 집회 사회도 보고. 본부에서 챙겨야 되는 게 많았어요. 
수도권 본부가 분할되어 경인본부가 창립된 다음에는 본부장을 보좌해서 본부 운영 전반에서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데, 주로 지원하고 같이 하는 현장 투쟁은 토목건축 관련이에요. 아침에는 선전전, 오후에는 현장투쟁 아니면 회의, 이렇게 굴러가는 게 일반적인 일상이에요. 
 
원청을 상대로 전 업종이 함께 싸우는 투쟁을 만들겠다고 결정한 거에요
지금 본부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 뭐에요?
방금 한 얘기와도 맞물리는 건데, 그렇게 일상적으로 투쟁하는 게 사실 분과별로 다 따로 이루어져요. 토목건축은 토목건축 고용투쟁만하고, 타워는 타워만하고. 왜냐하면 현장에 투입되는 시기가 분과별로 다 다르거든요. 그런데 우리 본부에서 얼마 전 상당히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어요. 원청을 상대로 전업종이 함께 싸우는 투쟁을 만들겠다고 결정한 거에요. 
 
지금 건설노조 경인본부는 플랜트건설노조 경인지부하고 통합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게 통합 운영을 하는 게 어떤 의미고 또 실제로 달라진 게 뭐가 있나요?
상황을 밀접하게 공유하고 연대가 조금 더 쉬워지지요. 예를 들면 플랜트 현장에 건설노조 기계지부가 투쟁을 지원한다거나, 토목건축 분과에 고용 문제가 발생 했을 때에도 타워크레인 조합원들이 현장을 멈춰준다거나 하는 공동투쟁이 있었어요. 아직까지는 본부 차원에서 각 지부나 분과의 투쟁에 서로 지원하고 연대를 원활히 하는 수준이에요. 지금 위에서 이야기한 공동투쟁의 목표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시작과 끝을 같이하는 공동의 투쟁을 하자는 거에요. 그게 아까 말한 원청을 상대로 협약을 챙취해보자는 투쟁이에요. 지금까지 시도도 거의 없었고, 결과도 좋지 않았고. 아마 아무도 안 해본 싸움을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건설공사의 일반적 구조는 공사를 의뢰한 발주처가 있으면, 계약을 체결해서 공사를 책임지는 원청이 있다. 시기적으로는 먼저 땅을 파는 토목공사를 하고, 그 다음 철근콘크리트 업체가 들어온다. 중간에 타워크레인 임대업체가 계약을 맺고, 이후로 설비를 설치하는 업체, 전기, 소방, 통신업체 등이 들어온다. 그 다음에는 마감업체가 들어온다. 즉 공사를 수행하는 전문건설업체들이 시기별로 다른 것이다. 이렇게 원청-하청(전문건설업체)까지가 합법적 도급이다. 그 밑에는 불법하도급이 관행적으로 3~4단계까지 내려간다. 건설 투쟁은 전문건설업체를 상대로 조합원 팀을 고용하라고 요구하거나, 조합원이 있거나 생긴 경우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래도 원청을 직접 상대로 하면 만만한 싸움은 아닐 것 같은데요?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일단 한번 해보자고 했어요. 본부 차원의 투쟁이니까 모든 것을 본부에서 관장하고, 최종적으로 건설노조와 플랜트 노조의 임단협을 쟁취하는 게 목표에요. 조합원 팀을 투입해서 고용시키고, 또 조합원 아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까지 조직하는 거죠. 
보통 현장 크기에 따라 작은 곳은 3~4팀, 많은 곳은 훨씬 더 많이 투입이 되는데, 거기서 임단협을 맺고 좋은 노동조건과 임금을 쟁취하는 거죠. 조합이 있는 현장은 단가도 높고 좋은 현장이라는 소문을 내서, 또 일하는 비조합원들까지 조직하는 게 목표에요. 그래서 이 공동투쟁은 토목건축 노동자의 조직화 사업이기도 해요. 물론 만만한 게 아니죠. 시기적으로 긴 시간 동안 다 같이 싸워야 하니까. 이걸 건설 현장 투쟁의 모델로 시험해보려 해요. ‘같이 싸우고 같이 조직한다’가 핵심이죠.
 
아마 아무도 안 해본 싸움을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포부는 뭐에요? 이왕 시작한 운동 이것은 꼭 해보겠다는 목표가 뭔가요?
일단 분과별로 나뉘어 있는 지부를 통합한 건설노조 통합지부를 만드는 게 개인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중요한 목표에요. 그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건설대산별을 만들어 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다음에는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도록 건설노동자로서 제대로 기술을 배워서 일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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