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는글
- 2014/12 창간준비2호
현상유지 시나리오 유감
에너지 전망이나 기후변화 논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현상유지(business as usual)’ 시나리오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에너지 소비가 늘어난다고 가정할 때 예상되는 미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시나리오가 그렇듯이 현상유지 시나리오도 ‘작가’의 마음에 따라 크게 요동을 친다. 미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가능한 한 높게 잡아놓으면 큰 변화를 감행하는 용기와 그 과정에서 따르기 마련인 고통 없이도, 그럴듯한 성과를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한국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2020년까지 현상유지 시나리오 대비 30퍼센트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나리오의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현상유지 시나리오는 거짓 희망뿐만 아니라 공포 조장을 위해서도 사용된다. 최근에 대법 판결이 나온 쌍용차 정리해고가 바로 그렇다. 현상유지 시 발생한다고 가정된 사업 전망을 근거로 3000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이 회계 시나리오가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대법원은 경영진(작가)의 손을 들어줬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공무원연금 논란도 현상유지 시나리오에 따른 협박이 주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향후 발생할 수십조 원의 적자를 막기 위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연금 삭감 안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현상유지 시나리오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역사는 진보하고, 사회는 개선되고, 경제는 성장하고, 살림살이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배세력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거짓 희망을 제시했다가도, 현상유지라도 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부지런해지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협박한다.
그렇지만 미래가 아닌 현재를 버티기 어려운 사람들의 비명은 터져 나오고, 부족하나마 쥐어진 노동권과 사회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은 계속된다. 침묵과 각자도생, 쟁취와 사수가 만나 하나의 세력을 형성해, 현상유지 시나리오보다 재미있는 대안형성 시나리오를 만들 수는 없을까? 올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내다본 이번 호 사진과 기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