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4/11 창간준비1호

“비정규직도 재밌게 노조할 수 있을까?”

  • 김정환 자동차 부품업체 노동자
우리 회사에는 한국노총 노조가 있다. 아니지, 우리 회사는 아니다. 한 지붕에서 같은 작업복을 입고 같은 제품을 만들며 심지어 같은 통근 버스, 같은 회사 식당, 같은 탈의실을 쓰지만, 우리 회사는 아니다. 그냥 바로 옆에 있는 라인에서 서로 힐끗힐끗 쳐다보며 일하지만, 우리는 신분이 다르다. 쉽게 말해서 우리 회사는 그 회사의 하청이기 때문이다. 근데 골 때리는 건, 그 원청 회사도 우리 공장 전체를 다른 회사로부터 하청 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럼 그 원청의 원청이라는 회사는 도대체 뭘 하나? 현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단지 , 별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돈을 엄청 떼먹는구나정도만 다들 알고 있을 뿐이다.
 
그 원청 회사에 있는 한국노총 노조도 잘 보이지 않는다. 번듯한 노조 사무실 입구에는 노동자의 단결을 촉구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던데, 노조위원장은 헬스장 방바닥에 붙어 있더라. 몇 년 전 원청 회사 연말 성과급이 줄었을 때 몇 분 정도 라인을 중단시켰다는 얘기도 있지만, 자기네 조합원들 간식비를 늘리려고 우리 같은 하청 직원들 간식비는 아예 없앴다는 얘기도 들린다.
 
여름휴가나 연말처럼 성과급이 나올 때는 원청-하청 업체 직원들 간에 입조심 해야 한다는 게 암묵적인 분위기다. ‘1라인(하청)은 얼마 받았는데, 원청인 우리는 왜 이것밖에 안 되냐는 불만이 안 나오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맘때는 말과 말이 오가는 화장실, 식당, 흡연 구역, 탈의실에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이런 상황에서 단결은 무슨 놈의 단결.
 
나는 민주노총이라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완성차 라인과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우리 회사 라인의 특성상 , 오늘은 ○○노조(완성차)가 라인 안 잡나?”, “이번 주는 ○○노조가 파업 안하나?”라며 기대하기도 하지만, 그 노조가 파업 후에 위로금과 상여금으로 몇 백, 몇 천씩 받아간다는 얘기에는 비아냥과 자조가 뒤섞인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동료들은 ○○노조가 민주노총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한국노총도 얘기하고 민주노총도 얘기하는 단결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 회사에도 노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통근버스 안에서 자리 때문에 눈치 보고, 퇴근 전 화장실에서 기름때 묻은 손 씻을 때 눈치 보는 것 없이 같이 일하는 형, 동생으로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원청에서 하청으로 그리고 또 그 하청으로 작업공수가 전가되는 일이나 노동강도가 올라가도 하청 업체들은 앞으로 몇 개월짜리 알바만 뽑으라는 말도 안 되는 윗선의 지시에 우리가 하나의 노조로 같이 싸울 수 있다면. 그러면 진짜 재밌게 노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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