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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 창간준비1호

세월호 참사 200일, 다시 안전사회를 위한 운동에 나서자

  • 박상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회라는 사실을 만천하 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기업은 안전을 비용으로만 생각해 위험을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떠넘겼다. 정부는 이를 규제할 의무를 저버렸을 뿐 아니라 위험에 빠진 국민을 구해야 할 책임조차 방기했다. 4월 16일에 우리가 목격한 것은 대한민국의 벌거벗은 모습이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내에 구성된 ‘존엄과 안전 위원회’는 공적인 안전을 회복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위원회는 세월호 참사를 낳은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관한 다양한 분석을 살펴보았다. 세계 각지에서 대형 사고 이후 벌어진 운동을 조사하여 교훈을 얻었다. 한국 사회가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의 목록을 뽑기도 했다. 세월호 이전과 ‘다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노란 리본의 약속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한 일들이다.
 
안전한 나라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 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끄집어내서 소생시키느냐, 아니면 그대로 빠뜨려 죽이느냐 하는 기로에 있다.” “(세월호 참사는) 한낱 정권의 안위문제가 아니다” 참사 한 달 후 유가족의 말이다. 유가족들은 가장 먼저,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냈다.
 

망언과 음모론의 대결

상식적인 사회라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를 겪은 뒤 온 사회가 희생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유가족을 치유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또한 유사한 사고의 반복을 막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도 안전 대책을 둘러싼 입장의 차이가 생긴다. 기득권층은 사회의 구조를 바꾸려는 요구와 적당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요구를 나누고,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근본적인 요구는 무마하려고 할 것이다. 이 갈등 속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의 투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은 달랐다. 먼저 이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본 보수 진영은 각종 망언으로 세월호 추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어떻게든 책임을 피하려던 대통령이 여론에 떠밀려 눈물의 기자회견을 하는데에 이르자 보수진영의 ‘박근혜 지키기’가 본격화되었다. 세월호 침몰이 교통사고에 불과하다는 망언을 시작으로 하여 유가족들을 보상금을 노리는 파렴치한으로 매도하는 흑색선전이 커졌다. 이런 공작으로 추락하던 지지율이 반전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을 깡그리 뒤집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려는 쪽에서도 정권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 박근혜 정부가 어떤 의도가 있어 탑승자들을 구조하지 않았다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 결정적인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의혹이 확산되었다. 대통령이 참사 발생 후 7시간 동안 대면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은 극대화되었다.
 
이렇게 망언과 음모론이 대결이 시작되었다. 전선은 ‘박근혜 지키기’와 ‘박근혜 끌어내리기’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대형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의도(음모)에서 찾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다. 현대 사회의 대형 사고는 위험 요소로 존재했던 것들이 복합적으로 문제를 일으켜서 발생하는 것이지 개인의 실수나 의도로 환원하여 설명될 수 없다.
 
각종 의혹과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의 원인 제공자는 박근혜 정부다. 이들은 정보를 은폐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거부했다. 하지만 음모론적 사고가 사회운동의 전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음모론은 참사의 원인을 단순하고 직접적인 사건이나 인물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참사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과 대립하기 쉽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 흠집내기에 몰두하면서, 복합적 구조적 문제의 공론화와 그에 대한 대안 마련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리가 파고들어야 할 구조적 원인

정부와 보수 진영이 유가족들의 도덕성을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이를 방어하는데 많은 힘을 쏟아야했다.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통장 내역까지 공개하고, 대책회의는 특례 입학은 유가족의 안이 아니니 제발 좀 알아달라고 설명하고, 넘쳐나는 악플제보를 받고 단식 농성장에 와 폭식을 하는 일베에 대응했다.
 
그새 소중한 시간이 흘러갔다. 재판에서 추가로 드러난 상황. 검찰 조사 및 국정감사에서 더 규명해야 할 바. 안전한 사회를 위해 사후 대책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 이런 것들을 차근차근 발표하며 우리 활동이 국민 모두의 안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일방적으로 안전 대책을 내놓았다. 안전한 사회를 도모하기 위해 대형선사와 안전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그래서 안전 문제에 대한 권한과 능력을 더욱 더 민간 기업에게 넘기겠다는 아이러니로 가득 찬 대책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이자, 안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바뀌어야 할 한국 사회의 문제들이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는 국가에게 있으며, 안전을 시장과 기업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설득하는 데 우리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권과 보수 언론은 이미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다 밝혀진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검찰 조사와 국정감사가 지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첫째는 정부의 정책 기조다. 정부의 정책 기조 중 안전규제 완화, 안전업무 민영화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역대 정권이 추진했던 규제 완화는 청해진해운이 좀 더 과감히 이윤을 추구하는 동기가 되었다. 안전 규제가 자신들이 요구한대로 완화되고, 양벌규정 (실제 범죄행위를 한 사람 외에 관련된 법인이나 개인에게도 형벌을 가하는 규정)까지 완화되어 선장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자신들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확실한 신호였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을 유지한 채 관계자들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없다.
 
둘째는 기업 규제 방안이다. 청해진해운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이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한다. 여객선이 늘어도 선사가 부담해야하는 운항 관리비용은 줄어들었다. 연안여객선 선원의 75퍼센트를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모두 안전보다는 비용절감을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현재 정부 대책 어디에서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기업의 이해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의사가 없다.
 

안전 사회를 위한 우리 요구를 운동으로 만들자

이준석 선장에게 사형이 구형되고, 특별법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정부는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끝내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지금 마무리가 가능한가? 그 누구도 (심지어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는 자들도) 우리 사회가 세월호 이전보다 안전해졌다고 믿지 않는다. 수 없는 과제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우선 다음과 같은 일들이 중요하다. 첫째, 국가 재난안전관리 시스템은 책임과 권한이 일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권한은 위에 있어 현장의 재량에 제약이 크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은 아래가 지는 구조였다. 국가안전처로 재난위기관리기관을 통합한다는 정부 대책에는 이런 문제를 개선할 방안이 없다.
 
둘째,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 현장의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단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직접 배를 모는 선원들, 지하철·철도의 노동자, 다중이용시설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은 대형 사고의 징후를 미리 알아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들이다.
 
셋째, 기업에 대한 합당한 규제·처벌 역시 필요 하다. 안전사고가 나도 기업은 면죄부를 받는 한국에서 기업들은 안전 책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안전 규정을 어기고 회피하는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 권장되어 왔다. 사고를 발생시킨 기업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거나, 최고경영자·실소유주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기업의 탐욕과 무책임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가 알려준 중요한 과제다.
 
무엇보다 이런 과제의 실현 여부는 사회운동의 진전에 달려있다. 안전 사회를 위한 우리 요구를 중심으로 다시 나아가자. 특별법은 종착지가 아니라, 긴 길 위에 놓인 이정표가 아닐까.  
 
특별법은 종착지가 아니라, 긴 길 위에 놓인 이정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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